[세상만사-남도영] 나쁜 소비자가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15-10-02 00:38

폭스바겐 배출가스 장치 조작 사건으로 전 세계가 시끄럽지만, 폭스바겐 차량 소유주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폭스바겐그룹의 공식 조치를 지켜보고, 리콜이나 보상이 이뤄지면 이에 따르면 된다. 적극적인 소비자들은 소송을 통해 피해보상 요구에 나서고 있으나 일반인이 소송에 참여하기에는 절차도 번거롭고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아 보인다.

폭스바겐 사태가 고약한 것은 선량한 소비자를 ‘나쁜 소비자’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연비 좋은 독일 디젤차를 비싼 가격을 주고 구입했을 뿐인데, 졸지에 1급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내뿜고 다니는 반(反)환경 소비자가 됐다. 독일의 한 자동차 회사의 잘못된 결정으로 최대 1100만명의 전 세계 선량한 소비자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나쁜 소비자가 됐다.

디젤차는 가솔린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적은 데 반해 분진이나 질소산화물은 많이 배출한다. 때문에 유럽연합은 1992년부터 디젤차의 배출가스 기준을 정해서 관리해 왔다. 요즘 기준은 유로6다. 유럽에서는 2013년부터, 한국에서는 2014년부터 적용되고 있다. 유로6는 질소산화물 배출 허용치를 유로5 기준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강화했다. 1㎞를 주행할 때 질소산화물의 최대 배출 허용치는 80㎎에 불과하다. 미국은 유럽보다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이 2배 정도 엄격하다.

디젤차를 생산하는 모든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환경 기준이 강화될 때마다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했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번 폭스바겐 사태로 자동차 회사들이 높아진 환경규제 기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출가스 문제가 폭스바겐그룹 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일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15조2882억원을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었다. 자동차 회사로서는 가장 많은 비용이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전체 R&D 예산(18조8900억원)보다 3조원 적은 수준이다. 그런 폭스바겐그룹도 높아진 환경 기준을 맞출 수 없어 장치를 조작했다. 유럽이나 미국 등의 공공·민간 기관들이 실주행 시 배출가스를 측정해 보니 유로6 기준을 충족하는 디젤 차량이 거의 없었다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로 모든 디젤차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실주행 상황에서 배출가스 기준이 마련되면, 자동차 회사들은 디젤차 가격을 올리거나 디젤차 생산을 줄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가속페달을 꾹 누르면 ‘윙’하는 엔진소리와 함께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는 디젤차의 전성시대가 서서히 저무는 느낌이다.

폭스바겐 사태로 자동차 산업의 무게중심이 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등 친환경차 쪽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친환경차는 아직 불편하다. 풀어야 할 기술적인 문제가 많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사회적 인프라도 확충돼야 한다. 충전장치 설치와 비싼 가격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수소차는 전기차보다 더 많은 기술적·기반시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디젤·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한계는 조금씩 드러나는데, 미래의 차들은 아직 현실화되지 못한 게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형편이다. 소비자들도 이제 가격·연비·성능·디자인이라는 자동차 선택 기준에 ‘환경’이라는 조건을 집어넣어야 한다. 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자동차의 성능은 떨어지고, 가격도 높아질 것이다. 그래도 ‘자발적인 나쁜 소비자’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누리는 많은 편리함을 조금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집 크기와 자동차 크기는 줄이지 못한다고들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