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김상근] 악어의 눈물, 사람의 눈물

입력 2015-10-02 00:20

‘악어의 눈물’이란 표현이 있다. 사냥한 동물을 무자비하게 씹어 삼키면서 짐짓 눈물을 흘리는 악어의 위선적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전혀 슬프지 않으면서 슬픈 척하는 강자의 위선을 꼬집고 있다. 꼬리가 잘린 도마뱀이 눈물을 흘려본들 그것은 은유적 표현으로 차용되지 않는다. 힘없는 동물이 흘리는 눈물은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강한 자에게 늘 당하기만 하는 그들에게 눈물은 일상이다. 우리는 다만 강자가 눈물을 흘릴 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게 된다. 세상의 강자들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도록 만드는 존재다. 권력을 가진 자, 천금만금 가진 자들이 ‘악어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유력한 용의자들이다.

재벌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그들은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뭐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 범부(凡夫)처럼 눈물을 흘릴까? 혹여 그들이 짜내는 눈물은 위선적인 ‘악어의 눈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필동의 한 사무실을 찾아간 것이 몇 년 전 일이었다. 그곳에서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미 경영계의 전설이 된 이병철 회장의 친손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떼면서 사무실로 들어오던 그의 첫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입가에 엷은 환영의 미소가 머물러 있었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악수를 나눌 때 전해지던 미세한 손의 떨림에서 나는 무소불위의 재벌이 아니라 한 연약한 인간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란 짐작을 하게 되었다.

그와 나눈 대화의 대부분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오래전에 쓴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고 저자를 초청하여 점심을 대접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포함한 문화산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르네상스의 고향인 피렌체에서 문화 중흥의 비밀을 배워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꼭 한번 같이 가서 피렌체 공부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걷는 것이 불편해 피렌체에서 그 많은 미술관과 메디치 가문의 현장을 직접 돌아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즉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를 등에 업고서라도 피렌체 공부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피렌체에서 탄생했던 예술과 문화의 창달을 목격한다면, 그리고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시대와 사람을 바꾸어갔는지 알게 된다면, 그의 사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산업도 작은 변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그는 준엄한 법의 심판대에 올랐으며, 지금도 죄와 벌을 묻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내 눈으로 목격했던 지병 때문에 구속집행정지 상태에 있고, 지금은 한 병원에서 투병하며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법정에 나와 “모두 제 잘못이고 불찰이며 부덕의 소치”라며 “살고 싶다”고 재판장에게 눈물로 호소했다는 신문 보도를 보면서,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가 말했던 것은 과장이나 변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는 지독한 병마와 싸우고 있었으며, 살고 싶어서 절규하고 있다. 법리를 다툼하는 것은 내 전공도, 사명도 아니다. 그를 변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살고 싶다고 호소하는 그의 고통을 기억하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함께 흘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다. 그가 질병의 고통 속에서 필멸하는 인생의 유한성을 깨닫고 더 지혜로운 인간, 더 성숙한 경영자로 거듭나기를….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