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지붕 위의 달

입력 2015-10-02 00:20

지붕 위로 올라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다락이 있고, 다락에서 밖으로 난 창문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집에 살던 때. 지붕의 경사는 완만해서 걸어 다니거나 걸터앉거나 누워있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밤이든 낮이든 지붕에 올라가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한가하고 편안한 거리를 확보한 느낌이었다.

지붕 위에서 가장 자주 지켜본 것은 달이었다. 달의 실제 크기는 태양의 400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 또한 우연히도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400배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달과 태양이 같은 크기로 보인다. 어떤 이들이 그것을 ‘우주적 우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우주적 우연 덕분에 태양만큼 크게 보이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달을 보며 무엇인가를 빌거나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붕 위를 비추는 달빛은 돈을 많이 벌거나 건강하게 해달라는 현실적인 소원을 말하기에는 너무 맑고 은밀했다.

밤하늘에는 몇 백 광년이나 떨어진 별들이 수두룩했으므로, 몇 백 년 전 출발했을 별빛 아래 누워 있노라면,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밤하늘이라는 타임머신 속을 움직이던 달은 나에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끊임없이 속삭였다.

며칠 전 아파트 창문 너머로 한가위 보름달을 보았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각진 건물들 사이에 둥근 달이 떠 있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달빛은 불그스름했으나 고대 사람들의 믿음처럼 전쟁을 일으키거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힘은 이미 잃어버린 듯 보였다.

그래도 달은 달인데, 아버지에서 아들로 다시 그 아들로 이어지는 굳건한 혈연을 확인하는 반듯한 명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스듬한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이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지붕 위에서 홀로 바라보던 달이 그립기도 했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