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오래토록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네 살배기처럼 행복을 노래하기에는 우리 어른들은 경주말처럼 내달려하는 삶 한 가운데 놓여있다. 학비를 벌어야 하고, 은행 융자를 갚아야하고, 약값을 내야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싫은 갑에게 잘 보여야 한다. 또 남들에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삶은 행복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흘러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고장나버린다.
흔히 마음의 병을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울증을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 애칭하기에는 결과가 심각하다. 한국인의 사망원인 네 번째는 자살이며, 자살자의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자살률 감소를 위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치료를 권고했다.
구제역으로 전국 많은 돼지가 땅 속에 매몰됐다. 스스로 땅 속으로 들어가는 돼지는 없다. 살처분해 매몰하는 과정에는 사람이 직접 관여한다. 공무원 A씨가 이 작업현장에 있었다. A씨는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돼지 우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끼익끼익’ 돼지 우는 환청과 눈앞에서 돼지가 달려드는 환각에 시달리던 A씨는 결국 지역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하지만 A씨는 두 번 병원을 방문한 뒤 다시는 주치의를 찾지 않았다. 약을 먹고 일시적으로 환청과 환각이 나아진 까닭도 있었지만 직장에서 A씨가 병원에 다닌 사실을 알고 난 후 부당한 대우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치료를 포기하고 직장을 선택했다. 마음의 병은 휴화산과도 같다. 제 몸까지 태우는 용암이 언제 다시 분화할지 모른다. 두 번의 치료로 마음의 병이 치료됐을 리 없다는 것이 주치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항우울제의 약물 효과를 보이는 이 시기가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서정석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전신이 쇠약해져 오히려 자살을 시도하지 않다가 약을 먹고 일시적으로 기운이 났을 때 자해를 시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절반의 치료만 받고 일상으로 나간 몇몇 환자들을 걱정했다. 겉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마음의 감기는 얼마든지 후유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우울증을 한 개인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의학적인 상태라고 정의했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우울증은 마음이 아닌 뇌의 특정 부분이 고장 난 것”이라며 “우울증을 진단받은 아이의 부모는 오히려 안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각한 정신질환인줄 알았는데 ‘단순한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자살행동과 밀접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치료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중학생을 둔 한 부모는 퇴근 후 집에 들어와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목을 맨 자식을 마주했다. 부모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자식을 병원에 한두 번 데려가는 것에 그쳤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 탓이다. 미국에서 2010년 한 해 동안 우울증으로 정신의료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전체 환자의 68.2%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의료서비스 이용률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앞서 사례에서 보듯 우울증을 시간이 해결해주는 ‘마음의 감기’ 정도로 생각하는 안일함과 우울증 경험자들을 정신질환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개인 또는 타인의 우울증을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자살 기도자를 양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환경과 타인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우울증이란 점을 미뤄본다면 친구 혹은 동료, 부모, 자녀의 우울증은 나의 탓도 있을지 모른다. 우울증 경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의 사람 이야기]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가 아니다
입력 2015-10-05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