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한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 행사에 대해 9월 초까지도 어떤 지시를 받은 바 없습니다. 보통 세일 준비에 3∼4개월은 걸리는 유통업계 상황을 (정부가) 전혀 모르고 밀어붙인 것입니다.”(유통업계 관계자)
정부가 소비 진작을 목적으로 주도하는 유통업계 합동 할인 행사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가 1일부터 2주간 열린다. 역대 최다 업체가 참여하는 할인 행사지만 시작 전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높다. 유통업계 등이 ‘시장성’을 보고 자발적으로 주도하는 미국판 원조 블랙프라이데이와 달리 정부 주도로 급조된 행사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30일 “제대로 브랜드세일을 하려면 1년은 준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기존 세일을 당겨 하는 것밖에 안 된다”면서 “당장 매출은 발생하겠지만 다음 정기 세일 기간 매출은 줄 것”이라고 토로했다.
◇기업에 고용 할당, 가격 낮추기 압박하는 정부=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가격 낮추기’를 통한 소비 활성화 방안이다. 소비 활성화를 위한 소득 증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가격 정책을 선택하고 기업들에 참여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현재 정부의 경기 활성화 정책은 대부분 기업만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다. 가용 재원이 없는 상황에서 고용을 하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유보금을 많이 쌓아둔 민간 기업뿐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가 지난 7월 맺은 ‘청년 20만+ 프로젝트’ 협약이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이 협약을 바탕으로 지난달 잇달아 청년 채용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이에 화답하듯 임금피크제 확산과 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에는 사회적 책무가 있고 경기가 활성화돼야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니냐”며 “기업이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늘리기 어려운 것을 알기에 (정부가)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 여력 바닥난 정부의 한계=정부는 주요 경제 정책에 민간의 참여를 사실상 압박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하다”고 토로한다. 소비 활성화와 고용 확대 등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재정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재정 확대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재정 건전성을 더 방치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내년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길 것으로 추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경제는 고용, 소비, 투자 등 모든 분야에서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은 지난해 53만3000명에서 지난 2분기 30만명대로 급감했다.
고령화로 인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이 늘면서 실업자는 지난 1분기부터 100만명을 넘어섰다. 청년실업률은 두 자릿수로 껑충 뛰어올랐다
고용 악화 속에 소비 침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에 이어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까지 겹치면서 지난 2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新관치시대] ‘고용·소비’ 뾰족수 없는 官… 民쥐어짜기 나서
입력 2015-10-01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