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실질적 행위 주체로 민간을 내세우는 각종 경제정책을 양산하고 있다. 청년희망펀드,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 고용과 소비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정책을 입안하면 민간이 발로 뛰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민관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 정책이라고 하지만 이를 압력으로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자발성(自發性) 강제, 즉 신종 관치(官治)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지난해까지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 은행장 임명 등 낙하산 인사에 따른 관치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인사를 둘러싼 관치 논란은 전 정부에 비해 크게 줄었다. 반면 최근 들어 민관 협력을 표방한 경제정책이 늘고 있다.
청년고용을 위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 청년 일자리 20만+ 프로젝트는 대기업이 실질적인 정책 추진의 주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전 장병 1박2일 특별휴가 기간 중 영화관, 놀이공원 등 할인 프로그램 부담도 기업 몫이다. 사실상의 성금 성격인 청년희망펀드는 전 국민이 가입 대상자다.
방식도 바뀌었다. 1970, 80년대에 대통령과 고위 관료가 직접 나서서 공식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캠페인 성격을 띤 간접적 방식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민관 협력 정책은 고육지책 성격이 짙다. 우리 경제는 경기 회복과 장기 불황의 중대 기로에 서 있지만 경제 살리기를 뒷받침할 재정 여력은 부족하다. 내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40%를 넘어갈 정도로 지난 1년 새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우리 경제는 올 2분기까지 5분기 연속 0% 대 성장에 머물고 있다. 반면 30대그룹의 사내유보금은 710조원(3월 말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0일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시장논리에만 맡겨놓을 정도로 한가하지 못하다”며 “(민간 영역을) 쥐어짜기라도 해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관 협력 취지를 앞세우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식의 이벤트성 정책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실패한 전례에서 보듯 민관 협력은 급조해서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임기 중반을 넘기고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경제가 살아났다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민간기업에 지나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新관치시대] 재정난 정부, 돈 들어가는 사업 민간에 떠넘겨
입력 2015-10-01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