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달 사이에 영국 야당의 얼굴로 떠오른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인기몰이가 심상치 않다. 현지 언론들은 연일 코빈 대표와 관련된 뉴스를 쏟아내는 중이고 기사마다 댓글이 만선이다. 지지와 비난이 치열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등장은 정체됐던 영국 정치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9일(현지시간) ‘코빈 컬트(숭배)’라는 제목으로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노동당 콘퍼런스와 연설을 전후해 쏟아진 코빈을 향한 뜨거운 관심이 좌파 정치의 새로운 여명으로 이어질지를 집중 조망했다. 진보 성향의 노동당 지지 매체이지만 대표 경선 과정에서 코빈을 ‘구세대 좌파’로 평가절하하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립각을 세웠던 가디언조차 ‘코빈 신드롬’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가디언은 사회적 불평등 해소에 대한 갈증과 사회주의적 신념에 기초한 ‘코비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을 ‘코빈 클론’으로 규정하면서 “이들(코빈 클론)은 코빈과 비슷한 특정 세대의 중년 남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년 여성, 젊은 여자, 심지어 10대 소년소녀들까지 다양한 계층”이라고 분석했다.
32년간 변두리 정치인에 불과했던 코빈은 ‘바로 말하는 정직한 정치(Straight talking. Honest politics.)’라는 자신의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오랜 노동당 지지층과 사회 참여와 변화를 열망하는 젊은이들 모두에게 소구하고 있다.
특히 콘퍼런스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10, 20대 당원들과 변호사 대학 교수 등 기성세대, 정치에 무관심했던 평범한 소시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을 묶어주는 공감대는 “(코빈이) 우리가 아직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기존 정치권이 외면했던 생활 밀착형 문제들에 우직하게 천착해온 그의 일관된 언행이 ‘친절한 정치’로 대중에 비쳐지고 찬반 양론 속에서도 하나의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코빈은 이날 콘퍼런스 연단에 올라 “우리는 (지금의 사회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만 취할 필요가 없다”면서 “불의와 편견에 당당히 맞서자”고 강조했다. 그는 “불의를 허용하지 말고 편견에 대항해 함께 ‘더 돌보는 사회’를 건설하고 정치에 다시 우리의 가치, 사람의 가치를 불어넣자”고 역설했다. 더불어 핵무기에 대한 반대와 공교육 개혁, 10만 임대주택 활성화, 출산·육아 급여 확대, 철도 재국유화 등 경선 과정부터 강조했던 비전을 재차 제시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답은 왼쪽에…” 영국의 ‘코빈 신드롬’
입력 2015-10-01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