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심장사 장기기증, 생명나눔 새 희망 될까

입력 2015-10-01 02:46

뇌사 장기기증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이식용 장기를 확보하기 위해 의료계에서 ‘심장사(死) 장기기증(DCD)’을 법제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2의 장기기증 통로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의학 용어로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이라 불리는 DCD는 뇌사 상태가 아니라도 심장박동이 멎으면 가족 동의를 얻어서 곧바로 장기를 꺼내 이식하는 방식이다. 순환정지는 심장과 호흡 정지로 혈액순환이 멈춰 몇 분 안에 뇌 기능이 멎는 상황을 말한다.

턱없이 부족한 장기기증

지난해 뇌사 장기기증자는 446명이었다. 2012년 409명, 2013년 416명 등 해마다 조금씩 늘기는 하지만 3년째 400명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생체 기증(1952명)과 사후 각막 기증(73명)까지 합하면 지난해 2471명이 숭고한 ‘생명 나눔’에 동참했다.

이 정도 규모로는 급증하는 장기이식 대기자를 감당할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장기이식 대기환자는 30일 현재 2만6749명이다. 지난해 말 2만4607명에서 9개월 만에 2000명 이상 증가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의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뇌사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년 1100여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다. 이 때문에 생체 기증이나 뇌사 장기기증으로는 현재의 장기수급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장기기증 통로 ‘DCD’

뇌사는 뇌 기능이 죽었지만 인공호흡기로 산소를 공급하면 일정기간(수일 내지 2주) 심장 기능이 살아있는 상태다.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뇌사자의 경우 뇌사 판정기준 및 절차에 따라 장기기증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DCD는 명확한 법 규정이나 절차가 없다. DCD 대상은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뉜다. 병원 도착 때 이미 심장이 멈춘 경우, 응급실·중환자실 등에서 심폐소생술에 실패해 심장이 멎은 경우, 뇌사는 아니지만 회복이 불가능한 뇌손상을 입어 가족 동의 아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는 경우, 1차 뇌사 판정 진행 중 갑자기 심장이 멈춘 경우 등이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미국 등 장기기증이 활발한 나라들은 DCD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뇌사 판정 절차 중 갑자기 심장이 멎을 때에 한해 아주 드물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 김성주 교수는 “심장이 멈춘 후 조금만 지체돼도 산소 공급이 안돼 장기가 손상된다. 때문에 DCD 초창기엔 뇌사 장기기증에 비해 이식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식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장기 보존액 기능이 향상되면서 세계적으로 DCD가 느는 추세”고 설명했다. 실제 뇌사 장기이식과 DCD 이식의 효과에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보고가 나오고 있다.

“법제화해야” vs “생명경시 우려”

국내 장기이식 관련 학회와 기관은 ‘DCD 공론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한이식학회와 한국장기기증원은 17일 세계보건기구(WHO) 후원으로 열리는 ‘세계 장기기증 및 이식의 날’ 행사에서 ‘장기기증의 또 다른 통로-DCD’를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다. 학회는 2010년 장기이식법 개정 때 ‘DCD’ 조항을 넣으려 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외과 하종원 교수는 “사실 심폐 정지로 사망한다면 그 이후 상태는 시신으로 볼 수 있어 장기기증을 하는 데 법리적 문제가 없다. 국제통념상 ‘죽은 자만 기증한다’는 원칙에도 맞는다. 우리나라는 DCD에 대한 정의와 법적 절차, 적절한 프로토콜이 없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을 살리는 문제인 만큼 신경학적 기준인 뇌사든, 순환기적 기준인 심장사든 구분 말고 장기기증에 포함시켜서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생명윤리학계와 법조계 등은 “생명경시 풍조와 남용”을 걱정한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김명희 부장은 “아직 ‘어디까지를 죽음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상황에서 DCD가 무분별하게 적용될 경우 인간 존엄성 훼손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죽음의 정의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구하고, DCD 절차와 과정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며, 이를 시행하는 의료진이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주호노 교수는 “뇌사를 사망으로 판정하는 법적 기준과 절차가 있듯이 심장사도 순환이 완전히 멈춘 것을 판정하는 ‘사망 시간’의 법적 확립이 우선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연명치료 중단’ 논란처럼 사회적 논쟁도 불가피해 보인다. DCD 대상 범주 가운데 ‘회복이 불가능한 뇌손상을 입어 가족 동의 아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경우’는 연명치료 중단에 해당한다.

보건복지부는 DCD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뇌사 장기기증 활성화 정책에 중점을 두고 있다. DCD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해 볼 사안”이라고 밝혔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