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유엔 연설후 ‘무산 위협’ 속내는… 北도 ‘8·25 합의’ 깨기 부담 이산상봉 성사 안갯속

입력 2015-10-01 02:05
미국 인권단체 ‘인권재단’ 관계자들이 30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인권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남북관계가 대치 정국으로 돌변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맞서 직접적으로 상봉 행사를 위협하는 등 무산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갈등과 달리 남북은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모처럼 ‘8·25합의’를 이끌어낸 우리 측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북한 역시 행사를 무산시키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압박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유일한 평화교류 행사인 이산가족 상봉마저 ‘파탄’낸 책임을 지는 게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30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남북고위급 접촉 합의사항이자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대해 위태롭다고 위협하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면서도 “정부는 북한이 8·25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문제를 정치·군사적 이유로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무산 위협에 대해 정부가 ‘합의 이행’을 촉구한 것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의 시기와 의미가 남달라서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추가 핵실험 등 현재의 ‘북한 도발 정국’에서 유일한 평화의 끈 역할을 하고 있다. 남측이 국제사회와 발맞춰 대북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는 도발 저지 및 대화 유인책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무산될 경우 남북관계가 다시 미궁에 빠져 장기간 대치가 불가피해질 공산이 크다. 남북관계 국면 전환을 꾀하는 데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만한 계기가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인식이다. 8·25합의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상봉 행사가 무산되면 정부가 받을 타격 역시 적지 않은 점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지난 4월 불허했던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를 위한 남북 노동자단체 간 실무협의를 최근 승인했다. 정부 소식통은 “8·25합의의 이행 의지를 북한에 보여주고 관계 개선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발은 견제하면서도 민간·평화 교류를 통해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려는 ‘투 트랙’ 전략을 드러낸 셈이다.

북한도 내부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무산시키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 인권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했고, 최근에는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에 개설됐다. 박 대통령도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핵과 함께 인권 상황을 거론하며 북한의 ‘아킬레스건’을 부각시켰다. 10월 10일 전후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꾀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선 평화 교류 행사마저 무산될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및 비판 수위가 높아질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다만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남측과 국제사회가 추가 제재에 돌입할 경우 북한이 ‘몽니’를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10월에 즐비한 북한 이슈들의 단계적 정국 변화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당분간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