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란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손’은 서서히, 그러나 단호하게 변화를 주도했다. 땅 밑에 파묻혔던 ‘죽은 공간’은 다시 물이 흐르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복원된 청계천 주변의 기온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도시화의 고질병인 ‘열섬효과’(녹지가 사라진 도심 기온이 변두리지역보다 높아지는 현상)는 크게 줄었다. 콘크리트 고가도로와 아스팔트 도로를 걷어내자 사람이 모여들었고, 다양한 생물이 찾아와 생태계도 변모했다.
하지만 청계천이 온전한 생태하천으로 거듭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일 한강과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을 12t씩 대줘야 해 여전히 ‘인공어항’이란 지적을 받는다. 기준치의 80배가 넘는 대장균이 검출되는 등 수질 문제도 있다. 외래 동식물도 급속하게 퍼지는 중이다.
‘1.7도’의 의미
‘청계천 효과’는 온도와 생태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지난 20일 오후 1시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오충현 교수 연구팀과 함께 열화상 카메라로 청계천과 청계천에서 700m 떨어진 시가지의 온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청계천의 대기 온도는 25.6도로 시가지(27.3도)보다 1.7도 낮았다. 청계천 표면온도는 더 극적이다. 시가지 표면온도(29.5도)보다 크게 낮은 23.4도를 기록했다.
오 교수는 “한여름 뙤약볕에 있다가 나무그늘로 들어가면 대기온도가 5도 정도 낮아진다”며 “청계천은 나무그늘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충분히 청량감을 줄 정도의 온도 하락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쾌적해진 환경은 동식물을 부른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서울시설공단 앞에서 만난 서울여대 이창석 교수(한국생태학회장)는 손을 들어 중랑천과 이어지는 청계천 하류 부근을 가리켰다. 왜가리 다섯 마리가 긴 부리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이 교수는 “청계천의 물줄기가 도심 속 생태계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청계천의 어류는 피라미 가물치 등 25종(2010년 기준)에 이른다. 2003년에는 도로로 덮이지 않은 청계천 하류에서 겨우 4종이 관찰됐었다. 같은 기간 청계천의 식물은 62종에서 300종, 곤충은 15종에서 248종으로 늘었다. 천염기념물인 황조롱이를 포함해 곤충과 물고기를 먹이로 하는 조류도 6종에서 37종으로 증가했다.
수질 오염도를 보여주는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도 낮아졌다. 청계천의 BOD는 2003년 1.2㎎/ℓ에서 올해 0.4㎎/ℓ로 감소했다. 부유물질(SS) 농도는 7.2㎎/ℓ에서 2.5㎎/ℓ로 떨어졌다.
돌아온 물길은 사람과 문화도 불러 모았다. 청계광장은 크고 작은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매년 11월 200만명이 찾는 ‘서울 빛초롱축제’가 열리면 청계천은 수백개 등불로 치장을 한다. 두물다리에 있는 ‘청혼의 벽’에선 2008년 이후 1200여 차례나 청혼이 이뤄졌다. 청계천변 수변데크 등은 음악·연극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된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는 오간수교 수상무대에서 수상패션쇼도 열린다. 서울시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청계천에 설치하거나 벽화를 그려 넣는 ‘청계천 작품화’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청계천에서 열린 크고 작은 행사는 2000건에 달한다.
차수막·녹조·대장균…‘인공어항’의 한계?
“바닥으로 물이 빠지지 않고 직선으로만 흐르는 청계천을 과연 자연하천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지난 12일 청계광장부터 장통교까지 함께 걸은 이세걸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청계천을 ‘인공어항’이라고 했다. 한강 물을 퍼부어야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자생적으로 자연생태계를 이룰 수 없다는 지적이다.
청계천은 본래 사행하천(뱀처럼 굽이져 흐르는 하천)이었지만 홍수 때 물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직선으로 물길을 다시 만들었다. 물이 마르는 것을 막기 위해 하천 바닥에 차수막도 설치됐다. 이 때문에 청계천을 자연하천이라고 부르기는 사실 어렵다.
인공하천의 한계는 녹조로 드러난다. 봄가을이면 찾아오는 녹조는 골칫거리다. 한강 물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조류 포자에 질소·인 등 영양물질이 공급돼 녹조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다 BOD 수치는 줄었지만 여름철이면 대장균이 폭증한다. 청계천 하류의 중랑천 합류부는 2013년 기준으로 총 대장균이 기준치보다 82배나 높게 검출됐다. 대변에서 유래한 분원성대장균이 기준치의 60배를 나타내기도 했다.
겨우 자리 잡은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외래·위해종 생물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재 청계천 일대에는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 등 정부가 ‘생태계 위해종’으로 지정한 동물이 터를 잡았다. 단풍잎돼지풀, 가시박 등 위해식물도 증가세다.
박세환 김판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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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01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