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쁜 짓 말고도… 몰카, 쓰임새 많네

입력 2015-10-01 02:46
‘몰카’라는 표현에 경찰청 관계자는 “서운하다. ‘웨어러블 카메라’라고 하면 안 되느냐”고 했다. 경찰은 재작년부터 불법 게임장과 성매매업소 단속 때 옷에 붙이는 ‘보디캠’이나 ‘단추형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다. 증거 확보용이다. 조만간 적외선 촬영기능 등이 개선된 단추형 59대를 추가 구입하고 시계형 50대도 도입한다.

단속에 필요해 쓰는 경찰도 어감을 불편해하듯, 몰카는 엄연한 IT기기지만 ‘의심’을 더 많이 받는 물건이다. 불법과 합법 사이 어딘가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은밀히 쓰이는 탓에 부정적 인상이 앞선다. 지난여름 워터파크 몰카 사건은 아예 ‘범행 도구’란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러나 몰카로 불리는 위장형 카메라들이 처음부터 나쁜 일에 쓰라고 만들어진 건 아니다. 합법적인 시장이 형성돼 있고, 합법적인 일에 필요해서 찾는 수요자가 있다. 치마 속을 훔쳐보는 것 말고, 누가 무엇에 쓰려고 그런 카메라를 사가는 걸까.



학습용부터 자녀보호용까지

위장형 카메라 업계 1위 ‘다모아캠’의 주요 고객 중에는 고시·입시 학원가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강의 녹화에 몰카를 쓴다. 대놓고 찍을 수 없어서다. 칠판에 쓴 내용까지 빠짐없이 담으려면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한다. ‘복습용’ ‘학습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의류업체 직원들도 ‘시장조사용’으로 위장형 카메라를 사간다. 경쟁사 매장을 돌며 신제품을 파악할 때 쓰기 위해서다. 두 손이 자유로우면서 눈으로 보는 걸 그대로 담을 수 있는 안경형 몰카를 주로 사용한다.

사업하는 이들에겐 거래 상대방의 ‘발뺌방지용’ 대비책이 된다. 말로만 약속하는 구두계약 때 요긴하다. 상대가 말을 바꾸는 상황에 대비해 거래 장면을 찍어두는 것이다. ‘현장포착용’으로는 몰카만한 게 없다. 흥신소가 사생활 뒷조사를 하거나 개인이 불륜 증거를 잡으려 할 때 등에 동원된다.

파파라치에겐 필수품이다. 학원 식당 상점 등에 들어가 규정 위반 증거를 확보할 때 사용된다. 학원 불법영업부터 건강기능식품 무허가 판매, 재료 원산지 미표시, 일회용 비닐봉투 무상제공까지 찍을 건 많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놓은 아이가 교사에게 폭행당하진 않는지 확인하는 데도 쓰인다. ‘자녀보호용’ 감시 장비인 셈이다. 올해 1월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 단서를 포착한 게 몰카였다고 한다. ‘CCTV 보완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건물 내부 CCTV 카메라는 위치가 드러나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 있다. 이 빈틈을 메우려고 자재 창고나 사무실에 고정형 몰카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몰카가 범인을 잡는다

지난해 여름 한 건설자재 제조업자는 중국 현지 공장 곳곳에 벽시계형 와이파이(무선인터넷) 몰카를 설치했다. 물건이 자꾸 사라지는데 CCTV에는 포착이 안 돼 수를 쓴 것이다. 일부 직원이 평소처럼 물건을 가져가다가 덜미를 잡혔다. 특수카메라업계 관계자는 “범인들이 CCTV 앞에선 정체를 숨기지만 CCTV가 없는 곳에서는 방심하게 마련이다. CCTV가 범행을 막는다면 몰카는 범인을 잡는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몰카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장점 때문이다. 전국 지방경찰청 등에 정식으로 배치된 몰카는 보디캠 50대, 단추형 24대 등 74대다. 이달 말까지 시계형 등 109대가 추가되면 2.5배 수준으로 늘어난다.

정보기관과 군부대도 몰카를 사용한다. 군에서는 감시카메라가 닿지 않는 지역에 무선 몰카를 설치해 통신망으로 영상을 관찰한다고 한다. 이렇게 몰카는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감시와 정보 수집, 증거 확보, 분쟁 예방, 불법 적발, 범인 검거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몰래 사용하는 기기인 만큼 그 사실이 드러났을 땐 의심이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손목시계형 몰카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제2부속실은 과거 영부인 수행을 담당하던 곳이다. 청와대는 몰카가 회의 기록용이라고 주장했다.



잘 팔리는 건 조작 쉬운 생활밀착형

약 10년 전 초기 몰카 시장은 볼펜형 카메라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제품군이 한정적이고 대개 조잡했다. 요즘은 몰카 종류가 수십 가지다. 가장 많이 찾는 건 안경형이고, USB메모리, 손목시계, 차 키, 스위치, 화재경보기 형태 등이 뒤를 잇는다. 이밖에 넥타이, 벨트, 모자, 담뱃갑, 라이터, 블루투스 헤드셋, 스마트폰, 스마트폰 케이스, 보조배터리, 보온병, 탁상시계, 전등, 액자, 옷걸이형 등이 있다. 가격은 10만∼60만원 수준이다. 워터파크 사건에 사용된 몰카는 스마트폰 케이스형이었다.

몰카는 항상 소지해도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단순한 제품이 잘 나간다. 단추를 몇 번 누르는 것만으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촬영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화면이 없다. 작은 불빛이 변하는 것만 보고 녹음·녹화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능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복잡하면 잘 안 팔린다”고 전했다.

구매자 성별은 남녀가 7대 3 정도라고 한다. 연령대는 20대 중반부터 60, 70대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30, 40대 구매자가 특히 많다. 경제력이 있으면서 사회활동이 왕성한 시기다. 몰카는 다른 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많을수록 긴요한 도구다. 가격대가 높아 미성년자가 사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어린 자녀를 위해 부모가 사는 경우가 있다.



불법 사용·유통이 문제

업계는 몰카 범죄를 조장하거나 방조한 것처럼 비치면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미지가 나빠지면 사업에 타격이 된다. 이들은 음성적 이용보다 양성화가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몰카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규모가 크진 않다. 업계 1위 다모아캠의 연간 매출액이 10억원 정도다.

주요 업체는 신발이나 휴지통 몰카처럼 범죄 이용 가능성이 농후한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범행에 사용됐다가 적발되는 몰카는 개인이 개조한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이용한 범죄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업계는 강조한다.

워터파크 몰카 사건 이후 몰카 제조·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경찰도 원천적 금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범죄 말고도 필요로 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몰카를 사용한 범죄가 문제지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제품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며 “밀수를 통한 불법 유통 시장을 단속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