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최인호 2주기 추모집 ‘나는 나를 기억한다’] ‘별들의 고향’서 보내온 작가의 젊은날의 초상

입력 2015-10-02 02:54
1973년 출간된 ‘별들의 고향’(예문관)에 실린 청년시절의 최인호 작가 사진. 여백출판사 제공
1966년 스물한 살의 문학도 최인호(1945∼2013)는 안달이 났다. 아예 그해를 신춘문예 당선의 해로 정하고 무려 수십 편의 단편을 토해냈다. 그러곤 동생에게 대신 투고할 것을 명하고 군대로 갔다. 최소 몇 편은 당선 될 거라고 예상하고 당선소감까지 서너 개 써놓은 뒤였다. 눈 오는 겨울, 연병장에서 단체 기합을 받던 그에게 조교가 전보 한 장을 건넸다. ‘당선 축하, 조선일보 견습환자.’ 기뻐할 만도 하건만 전보가 한 장뿐인 것에 실망했고 그날 꿈속에서 그는 슬피 울었다.

‘별들의 고향’의 작가 최인호의 젊은 날을 기록한 문학적 자서전이 여백출판사에서 출간됐다. 2주기인데 자서전이라니 의아해할 듯하다. 하늘나라에서 보낸 편지 같은 이 책은 “작가가 타계하기 7년 전 기획하고 원고를 미리 써 둔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30일 밝혔다. 작가는 여백출판사 주필을 지냈다. 제목은 오스트리아 지휘자인 카를 뵘이 쓴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생전 육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가 소묘한 청춘의 모습은 어떨까. 스스로 까불이라고 할 정도로 수다스러웠던 어린 시절 모습, 영화 ‘노틀담의 곱추’를 보고 자신의 얘기인양 울었던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 ‘서울내기’의 누추했던 청소년기 삶 등 우울하거나 사소한 기억조차 눈에 아름답게 밟힌다. 열심히 소설을 쓰고 부지런히 발표했던 문학도 시절의 치기를 ‘자신의 이름이 신문에, 잡지에 오르내리는 기쁨에 대한 일종의 중독현상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는 대목에선 노년의 여유가 느껴진다.

1972년은 청춘의 정점이었다. 스물일곱 나이로 장편 ‘별들의 고향’을 신문에 연재한 것이다. 작가의 출세작이며 스스로 ‘웃지 않는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의 철권을 휘두르고 있을 때 나는 대통령 다음으로 신문에 많이 실리는 유명작가가 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곧 진보진영으로부터 ‘호스티스 문학’이라는 딱지를 부여받게 빌미가 됐고 스스로 문단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작가는 당시의 결정을 노년이 되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단 역시 야합이 횡행하는 조직사회라는 이유로….

2권으로 묶은 책의 1부는 작가 육성으로 전하는 젊은 날의 초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시기를 헤쳐 온 사람들이 끌어안았을 법한 시대의 격동과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소 아쉽다. 2부는 작가가 유년기, 청소년기, 대학시절에 쓴 글을 모았다. 잡지 등에 실린 글들을 수소문하고, 아내 황정숙씨가 보관 중인 육필원고를 갈무리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