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외자인 청와대가 왜 공천룰까지 간섭하나

입력 2015-10-01 00:46
청와대가 작심하고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합의사항인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0일 “민심왜곡, 조직선거, 세금공천 등이 우려된다”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김 대표를 몰아붙였다. 양당 대표 합의사항을 청와대가 정색하고 비난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데다 청와대 비판이 새누리당 친박계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20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 간 본격적인 힘겨루기의 서막이 오른 느낌이다.

권력의 속성상 대통령 승인이나 암묵적 동의 없이 청와대 참모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그것도 여당 대표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청와대 고위관계자 발언은 100% 대통령 의중으로 봐도 무방하다. 청와대의 불만은 대통령이 추석 연휴도 반납한 채 유엔외교에 전념하는 사이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돕기는커녕 청와대와 한마디 사전 상의 없이 야당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킨 데 있다.

고위관계자 발언의 행간을 보면 김 대표에 대한 강한 불신이 배어있다. 박 대통령은 참모의 입을 빌려 김 대표에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포기하라고 공개 경고한 거나 다름없다. 비록 직설적 표현은 없지만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어 유승민 원내대표를 몰아냈던 때가 연상된다. 김 대표로선 제2의 유승민 사태를 각오하지 않고선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추진하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가 국정운영과 관련이 적은 여의도 정치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행위는 지양돼야 마땅하다. 당청분리 원칙에도 위배된다. 공천 룰은 정치권이 국민 여론을 수렴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지 국외자인 청와대가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할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대구지역 행사에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을 배제하고 이 지역 출신 청와대 참모들을 대거 대동하고 참석한 데 이어 청와대 고위관계자까지 공천 룰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것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행여 박 대통령이 20대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은 공천 문제는 당에 일임하고 국정에 전념하는 게 옳다. 그것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