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정부의 노동개혁 문제 없나

입력 2015-10-01 00:30

정부가 노동개혁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밀어붙이는 걸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월급쟁이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이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달 13일 노사정 ‘대타협’을 지렛대 삼아 연내에 관련 입법을 마무리할 기세다.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광고를 쏟아내며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 노동개혁만 하면 저성장의 덫에 빠진 한국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고 국민 대다수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노동개혁의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정부는 청년고용 활성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노동개혁의 내용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실행의 강제력이 없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저런 포장을 걷어내고 보면 해고를 지금보다 더 쉽게 하고 근로조건이 담긴 취업규칙을 노사 합의 없이도 불리하게 변경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정부발 노동개혁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정리해고’로 제한하고 있는 해고 사유를 ‘성과(업무능력)가 떨어지는 경우’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게 현실화되면 다수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재취업이 어렵고 자영업 시장이 과포화된 상황에서 해고는 생존이 위협받는 벼랑으로 내몰리는 걸 의미한다.

저(低)성과 여부를 판단하는 열쇠는 사실상 경영진이 쥐고 있어 일반해고 규정은 눈엣가시 같은 직원을 솎아 내거나 해고에 대한 경영진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

노조의 동의 없이도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는 것도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다. 당장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임금과 정년 보장 및 연장을 맞바꿔 노사가 ‘윈-윈’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미 정년이 보장되는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가 정부나 재계의 공언처럼 청년 고용 확대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근거가 희박하다. 임금피크제를 시작으로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취업규칙 변경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반해고의 도입과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희생양은 노조라는 방패막이조차 없는 대다수 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될 것이라는 건 괜한 걱정이 아니다. 정부나 재계의 주장과 달리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낮지 않다. 해고가 쉽고 임금도 적은 비정규직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배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는 실직자나 미취업자 등이 기댈 사회안전망이 취약하다. 그런데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4년으로 연장, 고령자 파견 허용업종 확대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까지 추진할 태세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와 경제 주체들의 ‘고통분담’이라는 대전제로 돌아가야 한다. 상위 1% 고소득 노동자들의 양보도 필요하지만 사회안전망 확충, 소득과 능력에 비례하는 공정한 과세제도 확립,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등 다른 이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대기업은 700조원의 사내 유보금이 쌓일 정도로 점점 부자가 되고 서민 노동자와 영세 사업자들은 점점 가난해져가는 불합리한 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 이런 논의들은 미룬 채 강행하는 ‘노동개혁’은 기득권의 편에 서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시키는 일이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