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층 마천루인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근무하는 초대형 크레인 기사 문경수(53)씨를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호이스트(건물 외벽의 간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얼굴도 샤방샤방, 몸매도 샤방샤방∼.”
기자를 반긴 건 호이스트 조종원 오이순(56)씨의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온 트로트 가락이었다. 동승한 근무자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국내 최고의 건물을 짓고 있다는 자부심과 활력이 묻어났다.
사방이 숭숭 뚫린 호이스트가 속도를 내자 발아래 풍경은 점차 소인국으로 변해갔다. 79층에서 내려 좀 더 작은 호이스트로 갈아탔고 이내 103층에 발을 디뎠다. 다음은 10여층 높이의 철제 사다리에 오를 차례다.
안전 문제로 타워크레인 캐빈(조종실) 공개를 꺼려왔던 시공사를 어렵게 설득한 만큼 호기롭게 ‘등정’을 시작했다. 동행한 현장 직원이 카메라 가방을 대신 짊어져 주었지만,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긴 기자의 팔다리는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절반 정도 오르니 긴장한 탓에 온 몸이 저려왔다. 크레인의 세로 축 구조물(마스터) 밖으로 보이는 까마득한 풍경에 현기증까지 났다. 앞으로는 나이에 걸맞은 취재만 하겠다고 거듭 다짐하면서 마침내 마천루 최고봉에 올랐다.
남산의 N서울타워(480m) 높이를 훌쩍 넘어선 504m 타워크레인 정상부에서 바라본 전경은 거칠 것이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은 서울 경계를 지나 인천 송도까지 뻗어나갔다.
순수 국내 기술로 건축 중인 롯데월드타워에선 9월 말 기준으로 중심 코어부 철골 구조물 113층, 외주 커튼월 103층 공사가 진행 중이다. 123층, 555m 높이로 2016년 말 완공 예정이다. 현재까지 공사비용은 3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눈을 돌리자 크레인 아래에서 각자 맡은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로프 하나에 생명을 맡긴 채 100층이 넘는 허공에서 노란 안전망을 설치하는 사람들은 숭고해보이기까지 했다.
“좌씽(좌로), 우씽(우로), 붐 내리고, 붐 올리고.”
물 한 모금으로 긴장을 푼 뒤 26년 경력의 베테랑 기사 문씨가 근무하는 조종실 문을 살짝 열자 알 듯 모를 듯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씨는 지상의 타워크레인 신호수와 무전기로 소통하며 스틱을 잡은 양손을 섬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선은 와이어 끝에 달린 카메라에서 보내주는 화상에 고정돼 있다. 지상에서 올리는 자재들은 10t이 넘는 대형 철 구조물이 많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내년 말까지 공사를 마치기 위해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시기에는 매일 철야 작업이다. 문씨도 이달 들어 24시간 2교대 근무 중이다. 문씨의 작업 공간인 1평 남짓한 캐빈은 작은 원룸이나 다름없다. 에어컨이 달린 내부에는 크레인 제어장치와 운전석 외에도 커피포트, 간단한 생활용품들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대형 물통 2개의 용도가 궁금해 물었더니 문씨는 웃으면서 “제가 소변을 이렇게 많이 보는 게 아니라 운동기구”라며 즉석에서 시범을 보였다. 잠시 일이 없을 때는 음악을 들으며 운전석 아래 난간에 묶은 고무줄에 발을 끼우고 양손으로 물통과 발을 번갈아 들어올리며 근력운동을 한다고 했다.
말벗이 없는 외로운 공간에서 가장 큰 낙은 사랑스러운 두 딸과 틈틈이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운동 삼아 점심은 지상으로 내려가서 먹지만 저녁은 크레인으로 도시락을 전달 받는다. 황금빛 노을을 바라보며 즐기는 혼자만의 만찬이다. “서울이 모두 내 발아래 있어요. 주변사람에게도 제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얘기하죠.” 문씨의 말엔 국내 최고 건물을 자신의 손으로 짓는다는 자긍심이 가득했다.
해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췄다. 땅거미가 어둑하게 내려앉고 도심 빌딩 숲과 장난감 같은 자동차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서 문씨의 야간작업이 시작됐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피로가 더해지는 야간작업은 더욱 조심스럽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둘러 야간 촬영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했다.
하루 종일 대형 엔진이 쏟아내는 소음과 진동, 무거운 자재를 들어올릴 때 발생하는 흔들림과 크레인이 좌우로 회전할 때의 어지러움 등을 뒤로하고 또다시 철제 사다리에 몸을 맡겼다. 얼마를 내려왔을까.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줄기 막새바람이 이른 아침부터 팽팽했던 긴장감을 훑고 지나갔다.
사진·글=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