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이 문제에 대해서 혹시 국회의원이나 정치권으로부터 무슨 압력을 받은 게 있습니까. 청와대로부터는 지시를 받은 게 있습니까.”(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없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압력을 넣거나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형님 입김, 확인 임박=2010년 2월 19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포스코가 고도제한을 어기고 쌓아올린 포항 신제강공장을 둘러싼 국방위원과 국방장관 사이의 신경전이 뜨거웠다. 2009년 6월 해군6전단 경비병의 최초보고 직후에 철거 결정을 내렸던 국방부가 “비행안전평가를 해보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이었다. 일부 국방위원은 ‘포스코 봐주기’ 아니냐며 정치권 개입 의혹까지 제기했다.
김 전 장관은 외압 의혹을 일축했지만 국방위원들은 이 같은 발언이 전혀 근거 없는 일이 아님을 시사했다. 국방위가 열릴 때마다 이 문제를 지적해 온 유 의원은 김 전 장관에게 “나는 지역구가 포항인 동료 국회의원에게 제발 봐 달라고 청탁을 받는다”고 밝혔다. 민원을 한 의원의 이름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학송 국방위원장은 “이병석 의원님 지역의 대단히 어려운 사항으로서 국방부 관련 민원이 제기됐고, 그 애로사항이 내게도 접수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날선 설전 속에 녹아 있던 의혹은 5년여가 흘러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포스코 비리를 광범위하게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이상득(80) 전 새누리당 의원과 이병석(63) 의원을 다음달 초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들이 고도제한 위반으로 답보 상태였던 신제강공장 준공이 가능토록 영향력을 행사해주고, 각각 측근이 소유·운영하던 포스코 협력업체를 통해 실질적으로 자금을 전달받았다고 의심해 왔다.
검찰은 경북 포항 현지에 사무소를 내고 29일까지 티엠테크 등 이 전 의원과 얽힌 3곳, 이앤씨 등 이 의원과 이어진 2곳의 일명 ‘기획법인’을 압수수색했다. 고질적 민원해결의 대가로 포스코가 협력업체를 통해 매출을 보장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측근들이 운영하는 협력업체에 일감을 할당해주는 변칙적 방식으로 전달한 자금은 수십억원에 이른다고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두 전현직 의원에게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닌 뇌물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제강공장이 무엇이기에=포스코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 민원사건의 시작은 2009년 6월 해군6전단 소속 한 경비병의 보고로부터 시작된다. 고도제한 66.4m가 유지돼야 할 비행안전 제5구역에 지어지던 신제강공장 건물이 높이 19.4m를 초과해 85.8m까지 솟은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활주로에서 불과 2.1㎞ 떨어진 곳에 등장한 비행 장애물에 군은 분주해졌다.
보고를 받은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 2009년 8월 14일 “법적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해군6전단은 국방부를 통해 포스코와 포항시에 공문을 보내 공사 중지, 시설물 철거를 요청했다. 포스코는 공정률 95%에서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1조4000억원을 투입했지만 명백한 불법 건축물이었다.
다만 해군6전단이 보낸 공문의 ‘원상복구’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거의 지어진 공장이고 철거하면 국가적 손실을 입게 된다는 경제 논리가 고개를 들었다. 정부는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며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유 의원이 문제시한 국방부의 ‘비행안전평가 후에 검토 및 적용 예정’이라는 결정도 이 와중에 나왔다. 결국 이 사업은 2011년 1월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서 설계를 일부 변경하는 방식의 권고안이 내려지며 백지화를 모면했다. 높이를 낮추는 대신 공항 활주로를 연장하면 안보와 경제 모두를 잡을 수 있다는 절충안이었다. 포스코는 1000억원을 부담했고, 신제강공장은 2011년 2월 22일 준공됐다.
포스코·포항시·해군6전단의 삼자 합의 이후에도 포스코 봐주기 의혹은 계속됐다. 신제강공장 준공은 성남 공군비행장, 롯데그룹의 제2롯데월드 등과 함께 이명박정부의 군사관련 시설 편법 행정조정 승인의 사례로 공격받았다. 포스코와 포항시가 고도제한 구역임을 모르고 95%까지 지어버렸다는 해명 역시 석연찮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포항시가 착공을 허가한 것부터가 포항 지역 정권실세의 입김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말 많던 포스코 신제강공장… 결국 ‘형님 입김’ 있었나
입력 2015-09-30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