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이란에서 민주화운동을 한 청년이 있었다. 수감돼 고문을 당하고 수차례 죽을 고비도 넘겼다. 97년 9월 청년은 결국 자유를 찾아 친형이 일하고 있던 대한민국으로 왔다. 정치적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살다 붙잡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당하기도 했다. 이국땅에서 떠돌다 복음을 접한 그는 역경 속에서도 예수님께 굳게 의지했다. 기나긴 소송 끝에 지난 1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외국인등록증도 받았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 될 희망에 부풀어 있다. 28일 서울 광진구에서 만난 이란인 아르민(49·가명·사진)씨의 인생 역경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18년 만에 난민신청을 받아줬습니다. 정말 기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다 영국으로 떠난 이란 친구는 6개월 만에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졌어요. 그래도 저는 행복합니다. 아마 그 친구처럼 일찍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져 고난과 역경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지 모르니까요(웃음).”
아르민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는데도 주한 이란대사관 앞에서 이란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등 한국에서도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서울 광진구 나섬공동체(대표 유해근 목사)를 찾게 됐다. 이곳에서 다른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 공부를 하던 중 2011년 세례를 받고 무슬림에서 크리스천으로 거듭났다.
유해근 목사는 “아르민씨는 민주화운동을 한 데다 기독교로 개종까지 했기 때문에 이란으로 돌아가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르민씨도 “만약 이란으로 강제출국 당했다면 신변에 위험이 닥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란 정부에 대한 정치적 저항과 이슬람 배교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위기와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대한민국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다. 이란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살해당할 뻔했던 일, 비밀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무릎을 다쳐 여러 차례 수술했던 일, 외국인보호소에 붙잡혀 힘들게 생활한 일, 난민신청을 할 때마다 거부당했던 일 등. 그는 그때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어 주셨다고 간증했다.
그는 최근 구청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무릎은 성치 않지만 아직 젊어서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먹을 것, 입을 것, 그리고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 걱정하지 않을 겁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믿으니 앞일이 ‘술술’ 잘 풀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이다. 늘 성경을 읽고 찬송하며 생활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처음부터 선택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외국인등록증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그동안 힘든 과정을 겪게 하신 것도 예수 복음을 받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란에 있는 가족이 보고 싶다고 했다. 여느 한국 가정처럼 추석 때 가족을 만나 다정스레 담소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개종 이후 가족과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어머니가 보내 주시던 생활비도 이젠 오지 않는다.
“이란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이란에 있는 가족들도 저를 생각하면서 아파할 겁니다.”
그는 현재 힘든 공장 일을 하면서 이란정부에 반대하는 국제이란난민연합(IFIR)의 한국지부 대표를 맡고 있다. 이란의 민주화와 함께, 더 많은 이란인들을 난민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아르민씨는 “성경과 인권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신학교에 가고 싶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주시는 콜링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더 확실하게 하나님 사역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무슬림에서 크리스천으로 거듭남은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루신 일”
입력 2015-09-30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