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 10년] 관광객 붐비는 명소… “요식업만 호황”
입력 2015-09-30 02:40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9일 서울 청계천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8시간 걸려 경남 남해에서 역귀성했다는 김윤관(60)씨는 손자와 함께 청계광장을 찾았다. 김씨는 “손자가 어려서 멀리 가기 어려운데 도심 가운데에 시원한 분수와 하천이 있어서 보기 좋다. 앞으로 서울 오면 꼭 들를 것”이라고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청계천에 발을 담근 미국인 마크(33)씨는 “빌딩 숲 사이에 펼쳐진 산책로가 신선하다”며 “한국인 친구가 청계천에 꼭 가보라고 해서 들렀는데 정말 좋다”고 했다.
청계천은 본래 마른내(乾川)였다. 모래바닥이 드러나 있고, 비가 오면 범람하기 일쑤였다. 1411년 조선 태종은 청계천 일대에 축대를 쌓고 바닥을 파 물길을 넓히면서 개천을 만들었다. 조선의 수도를 흐르던 청계천은 일제강점기 이후 급격한 도시화 흐름 속에서 생활 오·폐수가 흐르는 흉물로 전락했다. 1958년 정부는 복개 공사를 해 하천을 도로 아래로 묻어버렸다. 그 위에 5.4㎞의 청계고가가 세워졌고, 주변에 상가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근대화의 상징’으로 변신했다.
50년 가까이 맨얼굴을 감췄던 청계천은 2005년 물길이 흐르는 하천의 모습을 되찾았다. 올해로 복원 10년이 지난 청계천은 서울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엇갈리는 ‘성적표’=지난 21일 오전, 평일인데도 청계천 주변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일본인 린코(21·여)씨는 “도심에 이렇게 긴 산책로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근처 면세점·궁궐·광장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가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꼭 봐야 할 곳 중에 하나로 꼽힌다”고 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계천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은 하루 평균 5만4000명에 이른다.
청계천은 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 점심시간엔 인근 직장인 산책로, 퇴근 후에는 데이트코스가 된다. 직장인 김모(29·여)씨는 “봄과 가을엔 줄지어 걸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청계천을 찾는다”며 “거대 도시의 중심에 이런 하천이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변 상인들 표정은 어둡다. 청계천 복원사업 당시 6만여명이던 주변 상인 가운데 1000여명은 서울시의 이주계획에 따라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 상가로 옮겨갔다. 그들은 불경기에다 높은 분양가, 치솟는 관리비 등을 따라가지 못해 울상이다.
남은 상인들도 타격을 받긴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유명 음식점이 터를 잡은 청계광장∼수표교 구간과 달리 관수교 이후 구간엔 오가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2차선으로 좁아진 도로에 차들이 몰리면서 청계천로 인근에 있는 평화시장·광장시장·세운상가·방산시장 상인들은 “자동차를 갖고 시민들이 쇼핑하러 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원 전에는 5∼6개 버스 노선이 지났지만 현재는 구역에 따라 1∼2개 노선만 운영돼 접근성도 뚝 떨어졌다. 상인 허모(56·여)씨는 “청계천 복원으로 관광객이 많아지긴 했지만 요식업 외에는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 이전보다 발길이 확실히 줄었다”고 했다.
◇‘교통지옥’은 없지만 ‘혼잡’은 남았다=1969년 완공된 청계고가는 모두 10개의 교차로를 신호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2003년 철거 직전에 하루 16만대의 차량이 이 고가를 이용해 도심을 동서로 이동했다. 복원 이후 만들어진 왕복 4차로 청계천로는 이 교통수요를 모두 소화하기 벅찼다.
서울시 교통정보과의 ‘시내 정기 속도조사’ 보고서를 보면 고가가 철거된 첫해인 2004년 청계천로의 연평균 운행속도는 시속 12.0㎞로 전년 대비 28.6% 줄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시민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운행속도는 2005년에 전년 대비 9.2%(시속 13.1㎞), 2006년에 8.4%(14.2㎞) 증가했다. 초기에 불편함을 느꼈던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우회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서울시내 교통혼잡 지역명단에는 여전히 청계천로가 빠지지 않는다. 올해 초 내비게이션업체 현대엠엔소프트가 서울시내 일반도로 126곳, 도시고속도로 16곳을 분석한 결과 청계천로는 상·하행 모두 교통혼잡도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서울시의 ‘2014년 교통혼잡도’ 자료에도 청계천로는 평균 시속 15㎞대에 그쳤다.
여기에다 산책로는 물이 넘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폭우로 청계천 일부 구간이 한시 통제된 날 수가 열흘이나 된다.
김미나 박세환 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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