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창균] 서민정책금융의 딜레마

입력 2015-09-30 00:20

서민 대상 신용시장에 정부가 자금 공급자로 직접 개입하고 있는 점에 대한 우려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햇살론의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미소금융대출 역시 연체율 상승과 대출대상자 선별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가용 자금의 절반가량이 대출에 활용되지 못하고 은행에서 낮잠 자고 있는 상황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햇살론과 미소금융대출로 대표되는 서민 대상 정책금융상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민의 금융생활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 직면하여 시장을 통한 문제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취해진 정책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정책금융상품이 서민의 애로 해소에 상당히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서민정책금융상품의 존재 자체가 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대출을 논의함에 있어 차입자가 상환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이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급박하게 자금이 필요할지라도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하는 것은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차입자를 벗어날 수 없는 부채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것으로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이자를 받지 않거나 시장 이자율보다 현저하게 낮은 이자율을 부과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지만 이는 정책적 배려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서민의 부담을 감안하여 시장 이자율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이자율을 부과하고 있는 현재의 서민정책금융상품은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봉쇄하여 정책 당국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농어민이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자금과 같이 영구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이라도 출구전략을 수립하여 외부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미소금융대출은 더 이상 금융정책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복지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 연체율 관리나 대출실적에 대한 압박에서 해방되어 차입자의 자활기반 확보를 지원한다는 본연의 목적 달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햇살론의 운영방식을 서민금융기관의 신용대출 역량 강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부실 대출금의 90%를 보증기구가 책임지는 현재의 구조 하에서는 금융기관들이 차입자의 상환능력 유무를 심사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서민금융기관의 역량 강화를 통한 자생력 강화로 햇살론에 대한 정책 지원을 점차 축소해 나간다는 당초의 의도 실현에 심대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출 실적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보증 비율을 과감하게 낮추어 서민금융기관이 대출심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채찍을 가하고 성과를 거두는 기관에 대해서는 정책적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햇살론 보증 기구를 서민금융기관의 상호보증기구로 전환하고 정부는 보증기구에 대하여 재보증을 제공함으로써 서민대상 신용대출 활성화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서민금융기관이 저신용자 대상 신용대출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일부 대형 대부업체가 지속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이윤을 실현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불식하는 데 서민금융정책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다.

박창균(중앙대 교수·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