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북한의 동상관광 상품

입력 2015-09-30 00:10

1992년 2월, 남북총리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만수대 광장’을 찾은 적이 있다. 남한의 국회의사당격인 만수대의사당이 위치한 중심가로, 시가지와 대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북측이 남측 기자들을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는 초대형 김일성 동상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안내를 맡은 조평통 직원은 “위대한 수령 동지의 동상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인민들이 수없이 모여든다”고 자랑했다. 그가 내게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잘 나와야 된다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대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김일성 동상은 23m 높이로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초대형 조형물이다. 1972년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청동에다 황금을 입혀 특수 제작했다. 이때 37㎏의 금이 사용됐으며, 지금은 김정일 동상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인근 만수대창작사 광장에는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상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현재 북한 전역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동상이 80여개나 세워져 있고, 흉상 등 자그마한 것까지 합하면 3만8000여개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상 공화국’이라 해서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동상 만드는 망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3대 세습 정권의 서글픈 자화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명 여행전문 출판사인 ‘론리플래닛’이 세계 500대 관광지를 발표하면서 남한의 창덕궁(194위), 비무장지대(195위), N서울타워(342위)와 함께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414위)을 포함시켰다. 공산 독재정권에 세뇌된 북한 주민들이야 세상물정 모른 채 경의(敬意)를 갖고 이곳을 찾겠지만 서방 관광객들은 부자(父子) 황금 동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보나마나 세습 왕조정권의 19세기적 상징물에 혀를 찰 텐데 북한 정권이 걱정이다. 전 세계 널리 소문까지 났으니 다짜고짜 방문을 막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