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된장찌개는 어떻게 해? 레시피 좀 알려줘 봐요.”(딸) “그런 게 어디 있냐. 재료 적당히 넣고 잘 끓이면 되지.”(엄마) “그러지 말고 자세히 알려줘 봐요.”(딸) “다시 국물 내고, 된장 풀고, 적당히 끓었을 때 감자, 애호박, 두부, 고추 이런 거 넣고 더 끓여.”(엄마) “얼마만큼이 ‘적당히’인거야?”(딸) “야! 그냥 하지 마.”(엄마)
어느 딸과 엄마의 대화 한 토막이다. 젊은 딸은 엄마에게 계량화한 레시피를 원하고, 보통의 엄마에게 ‘그런 것’은 없다. 엄마 세대는 경험이 쌓여 감이 된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익숙지 않다. 옆에서 보고 배우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대체 집에서 밥 한 끼 해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런 어려움을 간단히 해결해 주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tvN ‘집밥 백선생’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씨가 쌀도 제대로 씻을 줄 모르는 4명의 ‘요리치’에게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와 밑반찬을 알려준다.
20회까지 했을 뿐인데 온라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백선생 레시피’가 넘쳐난다. 응용 레시피들도 쏟아지고 있다. 평일 저녁 9시30분 방송되는 케이블 TV 예능인데도 시청률 6∼7%대가 나온다. 평일 저녁 예능 시청률로는 ‘대박’이다.
제작진도 이 정도 인기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집밥 백선생’ 연출 고민구 PD를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CJ E&M 본사에서 만나 인기 비결과 프로그램에서 담고 있는 ‘집밥의 의미’를 들어봤다.
-왜 ‘집밥’이었나요.
“요리 프로그램들을 보면 재미도 있고 눈도 즐겁지만 안 와 닿는 느낌이었어요. 이름도 어려운 소스, 구하기 힘든 재료, 이런 게 아니라 집에서 누구나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보자고 한거죠. 품을 조금만 들여도 행복해질 수 있는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으로요. 시청자들도 그런 걸 원했던 것 같아요.”
집밥과 밑반찬이 중심이 되면 달라져야 하는 지점이 생긴다. 보통의 요리 프로그램이라면 편집했을 장면들을 살려야 했다. 예컨대 재료를 다듬을 때, 불 조절을 할 때, 채소가 익었는지 확인할 때, 물을 더 넣어야 할 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편안하게 보는데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거죠. 굳이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아도 해볼 수 있을 정도로요.”
대신 ‘뷰티 샷’은 없다. 식당 진열대에 있을 법한 비주얼은 요리 초보들의 자신감을 꺾는다. 사실적인 장면으로 현실감을 심어준다. 고 PD는 “누구나 밥상 앞에서는 편하게, 시간도 돈도 적게 들여서 행복하게 한 끼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의도는 적중했다. 젊은 주부와 남성들, 자취생은 물론이고 수십 년 주방에서 노하우를 쌓아온 주부 9단까지 반응이 뜨겁다.
“손 편지가 많이 와요. 한 평생 주방에서 헌신했던 분들이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의외였어요. 50∼60대 주부 시청자 중에는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있어서인지 요리책을 내 달라는 요청도 많아요.”
하지만 ‘단맛’과 ‘짠맛’에 대한 지적도 많다. ‘만능간장’을 해 봤더니 ‘몸서리치게 짜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백씨는 시중에 판매되는 간장 10개로 만능간장을 만들어봤고,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단맛’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정도다. 건강을 생각하면서 설탕을 죄악시 하는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다. 그렇다면 단맛은 해로운 걸까. 전문가들은 지나치면 해롭겠지만 단맛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단맛에 반감을 갖는 것에 대한 고 PD의 해석은 이렇다.
“이중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음식에 설탕을 넣을 때 왠지 죄책감이 들어요. 얼마나 들어가는지 눈에 보이니까. 이래도 되나? 하는 거죠. 그런데 남이 해 준 음식에는 설탕이 많이 들어갔더라도 선뜻 먹게 돼요. 설탕이 눈에 안 보이니까. 집밥에 원래 단맛이 없었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집밥에 설탕을 배제한다는 건 엄마들의 음식을 부정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달아서 맛있는 게 아니라, 맛을 내는데 설탕이 필요해서 들어가는 거거든요.”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이다. 맛있게 먹고 행복한 것과 건강을 생각해 심심한 음식을 먹는 것, 어떤 선택을 할지는 각자의 문제라는 게 고 PD의 결론이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시간·돈 적게 들이고 편하게 한끼, 그게 행복”… ‘집밥 백선생’ 고민구 PD가 말하는 집밥의 의미
입력 2015-09-30 0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