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당국, 메르스 첫 ‘3차 감염’ 환자 숨겼다

입력 2015-09-26 02:18
지난 5월 30일 작성된 정부 메르스 대응조치 일일상황보고서. 54세 여성이 14번 환자로 분류돼 있고, 1번 환자 퇴원 뒤 입원한 특이 케이스로 재검사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사실상 첫 3차 감염자인 이 여성은 다음날 명단에서 빠졌다가 1주일 뒤 42번 환자가 됐다.

보건 당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초기에 첫 ‘3차 감염’ 환자가 발생한 사실을 숨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1번 환자에 의한 평택성모병원 내부 감염’으로 상황을 규정했던 당국이 이 틀에서 벗어난 환자를 은폐,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이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3차 감염이 확인된 후에야 뒤늦게 환자 명단에 추가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25일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메르스 대응조치 일일 상황보고’(5월 29일∼7월 31일 총 129건)에 따르면 당국은 5월 30일 오전 5시 현재 메르스 환자를 14명으로 파악하고도 이날 브리핑에선 13명만 공개했다. 1명을 고의적으로 뺐다는 얘기다.

빼놓은 환자는 54세 여성 L씨(6월 17일 사망)다. 5월 30일 오후 3시 작성된 상황보고서에 L씨는 ‘5월 19일 평택성모병원 동일 병동에 입원한 특이 케이스로 재검사 결과 확진’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L씨가 사실상 국내 첫 3차 감염자였음을 뜻한다. 1번 환자(68)는 L씨가 입원하기 전인 5월 15∼17일 평택성모병원에 머물렀다. 1번 환자가 퇴원하고 이틀 뒤 입원한 L씨가 1번 환자에게서 감염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국은 그러나 L씨를 1주일이나 지난 6월 6일 42번째 환자로 공개했다. 다른 곳에서 3차 감염자가 발생한 뒤였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L씨는 메르스와 다른 감염병의 경계선에 있다는 논란이 있어 늦게 환자로 분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상황보고서에는 당국이 사태를 ‘평택성모병원 내부 감염’으로 한정지으려 애쓴 흔적도 있다. 6월 2일 보고서에 ‘메르스가 일정 공간 안에서 발생한 2차 감염이라는 점에 관한 가설을 설정하라’는 지시가 발견된다. 안 의원은 지난 21일 메르스 국감에서 “국민을 사실상 속이는 쓸데없는 지시를 한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국감장에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