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美 정치에 데뷔?

입력 2015-09-25 03:18 수정 2015-09-25 03:21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미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다. 역대 교황 중 미 의회 연설을 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며, 그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거침없이 언급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방문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현지시간) 미 의회 상·하원 연설에서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정을 버려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다. 역대 교황 중 미 의회 연설을 한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다.

교황은 연설에서 “이민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을 같은 인간으로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어떤 사람도 문제투성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아선 안 된다”며 “우리가 항상 타자들과 관계해야 함을 인식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아울러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끊임없고 단호하게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동료 시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은 또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과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동 사태와 관련해선 “이슬람 무장단체 등을 비롯해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를 배격하자”고 말했다. 교황은 또 과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을 가혹하게 다뤘다고 질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민자 문제와 기후변화, 부의 불평등 문제 등 민감한 이슈들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미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에도 ‘교황 표심(票心)’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 CNN 방송은 ‘교황이 정치색이 강해져 워싱턴DC에 데뷔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교황이 미국의 가장 분열적인 이슈들을 건드리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에 직접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교황은 전날 백악관 환영행사에서도 미 대선 예비후보들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이민자 문제를 작심하고 언급했다. 교황은 전날 카퍼레이드 도중에도 멕시코 출신의 ‘앵커 베이비’(미국에서 낳은 불법 이민자의 자녀)인 소피 크루즈(5)가 자신에게 접근하려다 경호원에게 제지받자 자신이 탄 차까지 멈추게 한 뒤 이 소녀의 뺨에 입을 맞추며 축복했다. 소녀는 교황에게 ‘아버지를 추방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도 건넸다.

교황은 또 미국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더 적극적인 대처도 주문했다. 현재 미국에선 민주당이 기후변화와 관련해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으며 공화당에 맞서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키스톤XL 송유관 건설을 놓고서도 각각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있다.

교황이 종교 문제를 언급한 것도 공화당 일부 후보의 ‘무슬림 대통령 불가론’ 발언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폴 고사 하원 의원(공화·애리조나주)이 “교황이 좌파 정치인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하는 등 공화당 쪽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