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는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절기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확의 행복보다 나눔에 더 무게를 실어 왔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같은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감정은 몇 마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웅숭깊다. 그래선지 피붙이, 살붙이를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 한가위는 유난히 허전하다. 북녘에 가족을 두고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는 이산가족들에게 귀성길 체증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단 하루만이라도 그리운 이들의 얼굴 한번 만져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비록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지만 ‘상봉의 꿈’을 안은 보름달은 올해도 하나의 하늘에 크게 떠오른다.
80평생 가슴에 그린 그리움… 함남 단천이 고향인 허갑섬씨
이산가족 허갑섬(81·여·서울 성북구)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봉자로 선발되지 못했다. 2000년부터 상봉이 있을 때마다 신청했지만 한번도 북녘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허씨는 함경남도 단천군에 살던 열여섯 살 때 병 치료를 위해 집을 떠나 의원 부근에 머물다 이산가족이 됐다. 가족 대신 보살펴주던 부부와 함경남도 흥남으로 피난했고 흥남철수작전 때 혼자 남한에 왔다.
6·25전쟁에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돼서 남한에 남기를 선택한 큰오빠를 극적으로 만나 의지하며 지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부모와 작은오빠, 언니가 있는 고향집이 떠오른다. 힘겨운 삶이었지만 학업에 애착이 많았던 부모의 뜻을 이어 억척스럽게 공부했고,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했다. 그리고 2001년까지 성신여대 교수로 일했다.
허씨는 1994년 중국에 갔을 때 바라본 두만강 너머 함경도 땅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인간은 왜 날개가 없을까 한탄했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가족들을 먼발치에서라도 바라봤을 텐데…."
중국에서 브로커를 통해 어렴풋이 기억하는 집 주소로 편지를 보냈다. 그때까지 그 집에 살고 있던 가족은 답장을 보내왔다. "전쟁 나기 전 마루에 누워 있던 한 살짜리 조카가 어느새 어른이 돼서 가족을 꾸려 편지를 보냈더라. 조카가 언니 오빠의 안부를 전해줬는데 직접 연락하지는 못했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던 연락은 1997년 이후 무소식이다. 허씨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100세가 넘으셨을 거다. 돌아가셨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이산가족 명단에서 부모 이름을 뺄 수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예가 취미인 그는 지난해 19차 이산상봉에서 탈락한 뒤 안타까움을 담아 붓글씨 200여자를 써서 거실에 걸어뒀다. 지난 14일 상봉 명단 발표 때 적십자사에 전화했는데 "명단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직원의 덤덤한 목소리가 야속하게 들리더라고 했다. 허씨는 요즘 '함경도 또순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쓰고 있다. 북녘 가족에 대한 기억, 자신의 고단했던 삶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만날 수 없으니 기억이라도 부여잡으려는 것이다.
형님의 피붙이라도 봤으면… 국군포로 형 가족 찾는 장사인씨
장사인(74·서울 동작구)씨의 형 장사국(사망 당시 86세)씨는 국군포로다. 북에 형이 남긴 피붙이들이 살고 있다. 형은 "나라가 어려우니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어머니 말에 전북 진안 고향을 떠나 1948년 입대했다. 전쟁통에 포로가 됐고, 북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장씨는 "형이 죽은 줄만 알았다. 육군본부에서 '전사했다'며 통지서를 보내왔다. 어머니는 '내 아들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면서 매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죽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형이 군대에서 휴가 나와 찍은 사진을 허리춤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없을 거라 여겼던 형은 2008년 편지 한 통으로 생존을 알려왔다. 편지와 함께 보내온 사진 속 얼굴은 꿈에서 보던 형이었다. 이때부터 장씨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에 매달렸다. 지난해에는 한 방송국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서 형과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품었다. 그런데 형은 2013년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래도 장씨는 북에 남아 있는 형의 가족과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카를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과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 어머니가 형을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를 꼭 말해주고 싶다.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삶을 살라고 가르쳤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남북은 다음 달 20∼26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연다. 100명씩 200명의 이산가족이 가슴 깊이 묻어뒀던 한을 풀게 된다. 상봉이 이뤄지는 건 지난해 2월 이후 1년8개월 만이다.
추석을 두 주 앞둔 지난 14일 6만6000여명 이산가족 중 상봉 대상으로 선정된 250명 명단이 발표됐다. 이 중에도 100명만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다. 탈락한 사람들은 또 기약 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혈육과의 만남을 포기하는 이는 없다. 이번 한가위에도 남과 북의 이산가족은 같은 소망을 품고 같은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한가위] “다음 명절엔 꼭…” 그래도 희망 품은 이산가족
입력 2015-09-25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