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30억 빼돌린 딸 ‘성년 후견 청구’로 제동… 치매 아버지·정신질환 오빠 각각 요양원 유기

입력 2015-09-25 02:23
“가족처럼 지낸 이웃사촌이 요양원에 유기됐습니다. 검사님들이 도와주세요.”

서울 동작구 한 상가건물 세입자들은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에 이런 진정서를 냈다. 세입자들은 건물주 A씨(84)와 가족 같은 사이였다. A씨는 정신질환을 앓는 아들(55)과 이 건물에 거주했다. 식당을 하는 한 세입자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A씨에게 종종 식사를 챙겨줬다. 적적한 A씨의 말동무가 돼주는 등 아버지처럼 모시는 세입자가 많았다.

그런데 A씨 부자(父子)는 지난 1월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다음 달 딸 B씨(52)가 A씨 소유의 상가건물 2채를 30억여원에 매각했다. 세입자들은 수소문 끝에 A씨가 지방의 요양원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들은 같은 시기 다른 정신병원에 들어갔으며, A씨는 요양원에 유기된 이후 치매 증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세입자 30여명은 “B씨가 내연남과 짜고 A씨를 유기하고 재산을 빼돌렸다”며 검찰에 성년후견청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장애 등이 있는 성인에게 가정법원이 재산관리 등을 대리하는 후견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다.

검사와 수사관들은 A씨가 머무는 요양원을 직접 방문하는 등 3개월 동안 조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공판3부(부장검사 고경순)는 A씨에게 딸이 아닌 다른 성년후견자를 지정해 달라고 서울가정법원에 청구했다고 24일 밝혔다. 성년후견자가 지정되면 후견자가 A씨의 동의 없이 매각된 건물을 다시 A씨 소유로 돌려놓을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A씨에게 다른 가족이 없는 상황이라 법원이 지정하는 변호사 등이 후견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