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민자 문제와 기후변화, 부의 불평등 문제 등 민감한 이슈들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미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내년 대선에도 ‘교황 표심(票心)’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 CNN 방송은 24일 ‘교황이 정치색이 강해져 워싱턴DC에 데뷔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교황이 미국의 가장 분열적인 이슈들을 건드리면서 정치적 소용돌이에 직접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교황은 우선 전날 백악관 환영행사와 이날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대선 예비후보들 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이민자 문제를 작심하고 언급했다. 그는 “나부터도 이민자 아들로서 ‘이민자들이 만든 미국’에 오게 돼 기쁘다”면서 이민자들에 대한 관대한 정책을 촉구했다. 교황은 환영행사 뒤 벌인 카퍼레이드 도중에도 멕시코 출신의 ‘앵커 베이비’(미국에서 낳은 불법 이민자의 자녀)인 소피 크루즈(5)가 자신에게 접근하려다 경호원에게 제지를 받자 자신이 탄 차까지 멈추게 한 뒤 이 소녀의 뺨에 입을 맞추며 축복했다. 소녀는 교황에게 “아버지를 추방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도 건넸다.
교황은 또 미국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더 적극적인 대처도 주문했다. 현재 미국에선 민주당이 기후변화와 관련해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으며 공화당에 맞서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키스톤XL 송유관 건설을 놓고서도 각각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있다.
교황은 아울러 ‘포용적인 발전모델’과 ‘약한 자들에 대한 관심’ ‘따뜻한 자본주의’ 등을 촉구했다. 이 역시 부자 증세 등과 관련해 대선에서 핵심 이슈로 부상한 부의 불평등 문제를 건드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황이 언급한 종교의 자유 역시 공화당 일부 후보의 ‘무슬림 대통령 불가론’ 발언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황의 일련의 발언은 진보 쪽에 치우쳐 있어 결국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고 있다. 아울러 미국 내 7000만명의 히스패닉계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여서 교황의 발언이 이들의 정치적 견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자 폴 고사 하원 의원(공화·애리조나주)이 “교황이 좌파 정치인처럼 행동한다”며 교황의 의회 연설을 보이콧하는 등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 반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황이 거리에서 젊은이들과 셀카를 찍거나 손키스를 날리는 등 대중친화적인 행보가 미국인들의 큰 환영을 받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교황이 美 정치에 데뷔?… 이민자 문제 작심하고 언급·기후변화 적극 대처 주문
입력 2015-09-25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