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년실업, 추렴 말고 제대로 된 정책·예산으로 풀라

입력 2015-09-25 02:11
청년실업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임에 틀림없다. 올 6월 말 현재 10.2%에 이른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고용 안정은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희망펀드 조성을 제안한 박근혜 대통령의 취지에 십분 공감한다. 청년 고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데 반대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이 사업이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즉흥적으로 추진되면서 좋은 취지와는 달리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선 청년희망펀드 성격과 목적에 대한 부처 간 설명이 다르다. 법무부는 목적이 청년 일자리 확보에 있다고 하는데, 황교안 국무총리는 “청년희망펀드는 일자리 확보 정책이 아니다”고 한다. 이 사업이 뚜렷한 계획 없이 시작됐다는 반증이다.

청년희망펀드는 여러 면에서 이명박정부 시절의 ‘통일항아리’를 빼닮았다. 통일항아리는 통일에 필요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당시 이명박 대통령 제의로 만들어졌다. 이 대통령이 통일항아리에 기부금을 내자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 여당 국회의원, 대기업 임직원 등의 기부가 줄을 이었다. 청년희망펀드도 박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한 뒤 황 총리에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24일 월급의 10%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 마당에 펀드에 가입하지 않고 버틸 여당 국회의원과 고위 공무원이 있을까. 기부 액수가 충성의 척도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부의 가장 큰 가치는 자발성에 있다. 비자발적 기부는 조세나 다름없다. 정부는 개인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서만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임직원에게 펀드 가입을 강요한 시중은행들의 사례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 펀드는 하나 국민 우리 신한 농협 시중 5개 은행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데 은행들이 무리하게 실적경쟁을 벌인 탓이다. 가입이 자발적이라면 은행들이 왜 펀드 조성 규모를 국무조정실에 보고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통일항아리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 임기 종료와 함께 흐지부지됐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청년희망펀드도 통일항아리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청년실업 문제는 펀드가 아닌 정책과 예산으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