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터키 보르둠 해안에서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난민 에일란 쿠르디의 사진이 전 세계에 보도되면서 난민문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난민이나 망명자의 사전적 정의는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이나 기근,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난민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난민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이웃의 냉대와 무관심이다.
북한을 탈출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의 숫자가 한때 10만명까지 추정되기도 했다. 자유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존을 위해 떠나온 사람들이다. 중국정부가 세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권문제 때문이며 그 중에서도 탈북민들에 대한 인권탄압이 첫 번째로 꼽히고 있다. 생존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강제북송함으로 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북 여성들은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다. 중국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의 자녀문제를 다룬 기사가 실렸다. 불법체류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국적을 취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가 거액의 돈을 들여 아이들을 본국으로 보내거나 한국인의 가정에 입양을 보내야 하는 현실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나라를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이 살던 족장의 시대에 가나안 땅에 대기근이 찾아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야곱의 때에 찾아온 대기근은 한 가문이 애굽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야 할 만큼 혹독했다. 이때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을 형제들의 손에 팔려 애굽에 가게 하셨고, 총리가 되게 하셨다. 요셉은 대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대풍년의 때에 미리 식량을 비축한다. 그리고 대흉년이 찾아왔을 때 애굽 사람들을 도울 뿐 아니라 난민들을 수용하고 그들이 흉년을 함께 극복하도록 지휘한다.
마태복음 5장 7절에 보면 예수님은 팔복 중 네 번째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다. 전도서 11장 1절에는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나와 있다. 사람이나 나라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난민신세였던 때가 있었다. 남의 나라에서 불법체류자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나라나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 중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도움을 베푼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들은 단지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도왔던 것뿐이다.
이제 우리도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불법체류자들의 인권을 돌보고 탈북민들과 그 자녀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의 인권신장과 난민보호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긍휼은 조건 없이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창교 목사 (창원 상남교회)
[시온의 소리-이창교] 긍휼이 필요한 시대
입력 2015-09-25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