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 강요한다고 공부할까… 꿈 깨시라, 엄마들

입력 2015-09-25 02:06
'교육열'이라고 하지만 실은 '광풍'이다. '대한민국의 미친 엄마들'은 아이들의 비명 소리마저 듣지 못 한 채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들의 비정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들녘 제공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저자 정찬용의 직설 "참 이상적인 말씀만 하시네요."

그렇다. 이 책은 틀림없이 냉소적인 반응을 부를 것이다. 한국에서 사교육 철폐나 교육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들은 어김없이 이 얘기를 돌파해야 한다. 이 책은 정공법을 선택했다. "공부만이 살 길"이라는 신화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린다. 학원은 장사하는 곳이고, 국제중 가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 또 '사'자 인생도 더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으며, '희망의 마지노선'이라는 공무원 취업은 "수 년간 미친 듯이 공부해서 수십 년간 죽은 듯 사는" 인생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첫 타깃은 학원이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학원을 다녀서 상위권이 되었을까? 혹시 원래부터 잘했던 아이들이 아니었는가. 엄마들은 왜 학원 선생들이 더 잘 가르칠 거라는 환상에 젖게 되었을까? 주변에서 만나는, 학원에서는 ‘스피커’라고 부르는 엄마들이 부추기는 공포에 감염된 게 아닌가. 일류대 출신 강사들은 확실히 더 잘 가르친다고? 그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왜 못하는지 모를 텐데. 학원에서 자기주도학습을 한다고? 과연?

“학원의 정체는 한마디로 ‘엄마들의 마음의 평화와 희망 유지를 위해 아이들이 자기계발 시간을 희생해가며 학교 수업시간에 이어 또다시 들러리 서주러 가는 곳’입니다.”

다음 타깃은 학교다. 국제중, 특목고, 영재교육원, 서울대 등 이른바 일류 학교들이 대상이다. 가장 유명한 국제중학교인 가평의 청심국제중 정원이 달랑 100명이고, 서울의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 부산국제중 해서 국제중 총 정원이 480명 남짓이다. 그런데 여기 들어가 보겠다고 수십 만명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국제중 전문학원엘 다니기 시작한다.

특목고는 어떨까? “국제중, 국제고, 외고, 과학고, 전국 단위 자사고는 모두 대부분의 아이들의 인생과는 상관없는 곳입니다. 타고난 공부 체질이라야 갈 수 있고, 가서 견뎌냅니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자 이룰 필요도 없는 꿈인 셈이지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현실 인식도 중요하지만 “이룰 필요도 없는 꿈”이라는 생각의 전환이야말로 이 책이 강조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부모의 공부 강요가 아이들을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2병’은 단적인 예가 된다. 중학교 무렵 우리나라 아이들의 반항은 흔히 사춘기 현상으로 해석돼 왔지만, 그것이 과거에는 그리 확연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공부 스트레스의 발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런 아이들이 평소에 하는 말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엄마, 나 오늘 배 아파. 학원 안 가면 안 돼?’라는 종류의 것입니다. 아이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들이 아이들이 하는 절규, ‘엄마. 나 학원 때문에 죽을 것 같아. 어떻게 해?’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신랄한 교육 비판이 책의 절반쯤까지 이어진다. 읽다 보면 속이 시원해지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읽게 된다. 구체성이 있는데다 책 후반부를 채우는 대안적 목소리가 꽤나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는 안 가도 된다’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 ‘떠날 수 없다면 학교를 그만두어라’ ‘공부 시키는 유치원은 허가를 취소한다’ ‘인문고 대 전문고의 비율은 20 대 80으로!’ 등 후반부에 나오는 소제목들도 온건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부만이 살 길은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수렴되면서 아이의 미래와 관련해 공부 이외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공부에 소질도 없고, 재미도 못 느끼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어다가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에 집어넣어 하루 종일 졸게 만들고 방과 후에는 소위 종합적으로 모자라는 아이들이 다 모이는 종합반 학원 교실에 때려넣어 강사들 원맨쇼 구경이나 하게 하면서 인생의 첫 번째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그 시기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게 하는 것보다 하고 싶고 구미가 당기고 뭔가 손에 와 닿는 현실적인 학습과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 백배 천배 나아 보이지 않나요?”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래 공부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왔던 것일까. 공부가 적성도 아니고 공부에 뜻이 없는 아이들도 엄청 많다는 사실을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 그들도 취향이나 태생에 따라 다르게 살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실업계 학교, 대안학교, 홈스쿨링, 유학, 기술전문학원 등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저자는 300만부 가량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를 쓴 정찬용씨다. 추석명절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토론에 올려볼만한 책이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