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동서양 고전 인용하며 美의 ‘색안경’ 지적

입력 2015-09-24 03:15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2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에 도착한 직후 “중국 정부는 해킹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사이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미 정부와 고위급 대화채널을 구축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사이버 안보에서 (중국 정부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해 2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충돌이 예상된다. 미국은 연방정부 인사정보 해킹의 배후로 중국을 지목하고 중국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시 주석은 시애틀에서 재계 인사들과 만나는 것을 시작으로 7일간의 방미 일정을 시작했다. 시 주석은 이날 전용기 대신 보잉 여객기를 개조한 특별기(사진)를 타고 시애틀에 도착했다.

◇미·중 간 사이버 충돌 예고=시 주석은 첫날 시애틀에서 기업인 등을 상대로 한 만찬 연설에서 “미·중 관계에서 이해와 신뢰는 깊어지고 소원함과 의혹은 줄어들기를 원한다”며 “중국은 결코 패권(헤게모니)과 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그러면서 “사이버 절도와 정부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한 해킹 모두 처벌돼야 할 범죄”라며 “중국은 사이버 안보의 견고한 수호자로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어 한비자에 나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도 거짓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와 남이 도끼를 훔쳐간 것으로 이유 없이 의심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중국의 고사도 소개했다. 미국이 근거 없이 중국을 의심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특히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관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투키디데스 함정’을 언급하며 “대국 간에 전략적으로 오판하면 스스로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 전쟁을 두고 패권국과 신흥 강국은 싸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내용이다.

시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을 언급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에게는 여전히 경제발전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중국 내 부패척결 운동을 거론하며 “이제 호랑이와 날파리를 모두 제거했다”면서 “이는 권력투쟁이 아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없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 TV 드라마로 워싱턴의 권력투쟁을 다루고 있다.

시 주석은 젊은 시절 미 정치학의 고전인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와 토머스 페인의 ‘코먼 센스’를 읽었고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미국 정치가의 사상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잭 런던,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었다고 말하는 등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과시했다.

이날 만찬 참가비는 3만 달러(약 3600만원)에 달했다. 만찬장에서는 시 주석 측근들이 중국 기업 ZTE의 최신 스마트폰 액슨(Axon)을 슬쩍 내비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는데, 기술력을 과시하고 미국 내 판촉활동을 돕기 위한 차원인 것 같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전했다.

◇시진핑, 시애틀서 경제협력 강조=시 주석은 방미 이틀째인 23일 오전 시애틀에서 정보기술(IT)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잇따라 만났다. 시 주석이 참석한 미·중 인터넷산업 포럼에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애플의 팀 쿡,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야 나델라,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보잉의 데니스 뮐렌버그, 알리바바의 마윈, 바이두의 리옌훙, 텅쉰의 마화텅, 롄샹의 양위안칭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시 주석은 이후 시애틀의 보잉사 본사를 방문한 뒤 저녁에는 MS 창립자인 빌 게이츠와 만찬을 가질 예정이다.

시 주석은 1993년 자신이 푸젠성 푸저우시 관료로 재직할 때 시애틀을 방문한 사실을 상기한 듯 “나한테 시애틀은 낯설지 않다”면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비롯해 이 도시의 이름이 중국에서도 매우 친숙하다”고 소개했다.

◇“북, 핵 포기 시 경제지원”=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은 25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NSC 선임보좌관은 워싱턴DC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양국 지도자는 북한 문제 논의에 상당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같은 회견에서 양 정상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한반도 평화체제와 경제지원을 제공한다는 약속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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