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척박한 기부문화에 모처럼 색다른 시도가 시작됐다. 사회 지도층이 경제·사회적 약자를 위해 ‘청년희망펀드’ 기부에 나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이 펀드는 ‘전시행정’ 냄새가 짙게 풍기지만 제대로만 이뤄지면 기부문화에 새 획을 그을 만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제 빈곤 퇴치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처럼 한국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내세운 기부문화가 정착할 수 있을까.
청년희망펀드의 가장 큰 불확실성은 사업 목적에 있다. 정부는 펀드 출범 직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한 청년 일자리 확보’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는 앞선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청년희망펀드는 일자리 확보 정책이 아니다.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자는 취지에서 시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법무부의 ‘청년희망펀드 공익신탁 인가서’에는 ‘청년 일자리 창출 지원’과 이를 위해 설립될 ‘청년희망재단의 사업 지원’을 사업 목적으로 기재했다.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태도는 이 사업이 뚜렷한 운영계획 없이 일단 출범부터 시킨 ‘졸속 행정’임을 드러낸다. 총리실 관계자는 23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을 구상 중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인정했다.
이를 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산 기부로 출범했다가 설립 취소 위기에 몰린 청계재단의 길을 따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 펀드는 청계재단과 달리 공익신탁 형식으로 운영돼 안전장치가 다소 확보돼 있다. 공익신탁은 재산권을 재단이 아닌 수탁자(기부금 관리자)가 갖는다. 청년희망펀드의 수탁자는 5개 은행이어서 불법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신탁 재산을 은행 재산과 분리해 ‘딴 주머니’를 차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부는 펀드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 대신 철저히 지도층 개인 기부를 통해 사회적 사각지대를 줄이는 데 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된 펀드가 범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과 무리하게 연계해 정치적 논란도 자초했다. 은행들은 임직원에게 펀드 가입을 강요해 벌써부터 불신만 심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4 국내 나눔실태 조사’에서 국민 54.6%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사회 지도층의 모범적 기부 증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런 기대 속에 출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펀드는 무사히 안착할까, 아니면 현 정부와 함께 2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까. 이날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처음으로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펀드에 가입했다. 이런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선 확실한 비전과 지속 가능한 사업정책이 필수적이다. 일단 출발은 ‘삐끗’했다는 평가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생각해봅시다-‘노블레스 오블리주 펀드’ 취지는 좋은데…] 청년희망펀드, 기대半 우려半
입력 2015-09-24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