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18년 만에 한국 법정에 서게 된 아서 존 패터슨은 여전히 범행을 부인했다. 패터슨은 23일 오전 4시2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발 대한항공 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36세가 된 그는 미성년자였던 18년 전과 달리 코와 턱에 수염을 길렀다. 옷으로 덮인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취재진 앞에 선 패터슨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범인이 에드워드 건 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같은 사람. 난 언제나 그 사람이 죽였다고 알고 있다. 유족이 고통을 반복해 겪는 것도 옳지 않지만, 내가 여기 있는 것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피해자 조중필(사망 당시 22세)씨 어머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패터슨이 범행을 여전히 부인하는 만큼 다음달 초 시작되는 법정 공방도 치열할 전망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1998년 범인으로 기소됐던 에드워드 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패터슨이 진범이라는 검찰 주장에 힘이 실린 상황이다. 1997년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조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이태원 살인사건’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패터슨과 리, 두 명 중에 한 명이 범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두 사람 역시 상대방을 살인범, 자신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때문에 향후 재판에서도 당시 엇갈렸던 두 사람의 진술 중 어느 쪽에 증명력을 부여할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법원이 당시 판결문에서 패터슨의 진술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리의 진술에 신빙성을 둔 점은 패터슨에게 불리하다. 사건 직후 범행을 실토했다가 바로 말을 바꿨다는 친구들의 증언도 패터슨에게 불리한 증거다.
법조 관계자는 “패터슨 쪽에서는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리의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리거나 리를 아예 증인으로 세워서 진술의 모순점을 찾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검 결과를 두고서도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부검의는 피해자 상처의 정도와 방향 등을 감안하면 범인은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힘도 압도적이었을 것이라는 소견을 냈었다. 당시 검찰은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신체를 지닌 리(180㎝, 105㎏)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1·2심 법원도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의 위치나 자세, 움직임에 따라 부검 결론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패터슨의 범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셈이다. 검찰 또한 2011년 12월 기소할 당시 혈흔분석기법 등을 동원해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던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정현수 양민철 기자 jukebox@kmib.co.kr
[관련기사 보기]
이태원 살인사건 ‘현장의 2인’ 중 한 명이 진범… 檢, 패터슨 혐의 입증 자신감
입력 2015-09-24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