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 등을 골자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23일 고시됐다. '국가교육의 설계도'인 교육과정이 바뀌어 학교 현장은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문·이과 통합 교실은 어떤 모습일지, 대학입시는 어떻게 달라질지, 숨어 있는 사교육 유발 요소는 무엇인지 등 새 교육과정으로 예고된 우리 교육의 변화를 3회에 걸쳐 살펴본다.
#2019년 봄. 고교 2학년 상욱이는 경제 관련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반선택’ 과목 가운데 미적분, 확률과 통계, 실용경제를 골랐다. 3학년 때는 ‘진로선택’ 과목 중 경제수학, ‘전문교과’인 국제경제 등을 이수할 계획이다. 고교 교과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의해 심화 수준에 따라 공통과목, 일반선택, 진로선택, 전문교과로 구분됐다.
#같은 학년 윤수는 의대 계열 진학을 원한다. 그래서 생명과학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1학년 때 일반선택 과목인 생명과학Ⅰ을 이수했다. 2학년 때는 진로선택 과목 중 생명과학Ⅱ, 3학년에 올라가면 전문교과 과목 중 고급생명과학, 생명과학실험을 공부할 계획이다. 두 학생은 선택과목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돼 대입과 직결된다.
◇문·이과 없어질까=교육부가 이번 교육과정 개편으로 구현하려는 미래 교실의 가상 사례는 이렇다. 영화에서 보던 미국 고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처럼 문·이과 계열 구분이 사라지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 가능해질까.
새 교육과정은 문·이과를 허물고 학생이 전공하려는 계열별로 학급이나 수업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그래픽 참조). 기존의 문과반·이과반 체계가 경상계열·어문계열·예술계열·이공계열 등으로 세분화된다는 것이다.
고1까지는 7개 공통과목을 배우므로 계열별로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고2부터는 학생별 진로에 따라 이동수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교는 학생 수요에 맞춰 가르칠 과목을 조정하게 된다. 예컨대 어문계열 희망 학생이 많아지면 고전 읽기, 심화 국어, 영미 문학 읽기 같은 수업이 대거 늘어나는 방식이다. 이는 확대되고 있는 대입 수시모집과 맞물린다. 대입에서 학생부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더 가속화될 수 있다.
하지만 문·이과 구분이 완전히 없어질지는 2017년 예고된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문·이과를 나누라는 정부 지침은 없다. 학교가 대입 준비에 편리하도록 문과반·이과반으로 나눈다. 수능에서 국어B·수학A·사회탐구를 치려는 학생은 문과반, 국어A·수학B·과학탐구를 택하면 이과반에 배치한다. 따라서 수능 과목과 출제범위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능이 기존처럼 문·이과 계열에 따라 달리 출제된다면 학교들이 문·이과 구분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과정의 이상론…실현될까=현장 교사들은 새 교육과정에 담긴 이상(理想)과 취지에 공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될지는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경기도의 고교 과학교사 김모(50·여)씨는 “선택과목 확대에 대한 뚜렷한 철학만 있다면 공간 등 물리적 한계는 학생 감소로 남는 교실을 활용해 극복하면 된다. 문제는 교원”이라고 지적했다. 늘어난 선택과목을 위해 정규 교원이 아닌 기간제 교사를 확충하거나 비전공 과목까지 두 과목 이상 가르치는 ‘상치교사’, 여러 학교를 전전하는 ‘순회교사’를 늘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교사 수급이 제대로 안 돼 수업이 정교하게 구성되지 못하면 학교는 난장판이 된다. 현재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목적’은 제각기 다르다. 예를 들어 경제 시간 교실은 수능·내신이 모두 필요한 학생, 내신만 챙기는 학생, 수능 최저 등급만 맞추려는 학생, 양쪽 모두 해당 없는 학생 등 최대 네 부류로 나뉜다. 새 교육과정으로 학생 선택이 강화된 상태에서 학교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할 경우 수업은 형식이 된다. 지역별·학교별 여건에 따라 교육 환경이 천차만별이 될 우려도 있다. 교육부 남부호 교육과정정책과장은 “새 교육과정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1차 조건은 교사 연수와 양질의 교사 배치”라고 말했다. 교실이 입시에 종속된 현실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서울의 고교 교사 박모(57)씨는 “대입 제도를 손본 뒤 교육과정을 그에 맞춰야 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물 흐를 길을 만들고 둑을 터뜨려야 하는데 둑 먼저 터뜨리고 물길을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전수민 기자 yido@kmib.co.kr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말한다] 영화 속 美 고교처럼 ‘이동수업’… 우리 현실과 맞을까
입력 2015-09-24 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