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초저금리 시대를 사는 유럽 금융 현장을 가다 (상)] 공적연금 점차 축소… 개인연금 지원은 강화

입력 2015-09-24 02:01
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한 노천카페에서 백발의 노인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늙어가는 대륙’인 유럽에서는 저금리와 고령화에 대비해 개인연금에 세제 혜택과 정부 지원을 늘려가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제공
초저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100세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개인도, 더 높은 수익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금융회사도 고민이 커지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와 제로금리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2회에 걸쳐 살펴본다.

가을비가 흩뿌리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알렉산더 광장 인근에는 이른 아침부터 백발의 노부부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센 강변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미술관거리 등 유럽 도시 어디에서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젊은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2008년에 이미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독일을 필두로 유럽은 확연히 늙어가고 있지만 노후를 보장해주는 다양한 사회적 장치와 개인 준비 덕분에 유럽의 노인들은 저금리 시대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유럽인의 노후 대책은 바로 연금이다. 프랑스의 경우 우리의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은퇴 직전 10년간 평균임금의 58.8%에 이른다. 국민연금의 39.6%보다 훨씬 높다. 여기에 직장생활을 하며 준비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까지 합치면 열심히 일하던 때 벌던 수입의 70% 이상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제로금리가 이어지고 있고, 평균연령은 80세를 넘어 100세를 바라보고 있어 공적연금 혜택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각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나이를 늦추고 연금 액수도 줄여가고 있다. 대신 개인들이 각자 노후를 대비하도록 각종 개인연금 상품에 여러 세제 혜택을 몰아주고 있는 추세다. 공적연금의 재분배 기능도 개인연금에 더해지고 있다.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 서부 낭테르의 BNP파리바 카디프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소매금융 부문 대표인 호세 데글리-에스포티씨는 “프랑스 국민의 노후 연금 저축액은 1조 유로에 이른다”며 “여기에 프랑스 정부는 유럽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직연금에서 소외되기 쉬운 자영업자들을 위한 연금(PERM)과 저소득층 연금(PERP) 등 공적연금에서 채우지 못한 빈 자리를 다양한 개인연금들이 채우고 있었다.

젊은이들도 연금에 관심이 높다.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한국의 변액보험과 유사하게 고수익을 노리는 장기 금융상품이 젊은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적 연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에서는 개인연금이 공적연금의 재분배 성격을 이어받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보험협회 토마스 뤼크 사회정책담당자는 “비스마르크가 처음 공적연금을 도입한 1881년에는 평균 수명이 40세였고 연금 수령이 시작되는 나이는 70세로 사실상 연금 수령자가 거의 없었지만, 여러 변화를 거치면서 20세기 말에는 공적연금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면서도 “노령화와 저금리 추세가 장기화되면서 2002년 연금개혁이 이뤄져 공적연금의 비중은 줄이고 사적연금을 더 준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자녀가 많으면 연금에 보조금을 추가로 적립하는 등 정부의 각종 혜택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연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베를린·파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