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유행일까, 시대적 현상인가.
정한아(33·사진)의 새 소설집 ‘애니’(문학과지성사)에 담긴 단편들에도 하나 같이 가족은, 정확히 부부는 어느 하나 정상적인 경우가 없다. 어머니는 통제 못할 알코올 중독 끝에 이혼을 당하고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어가거나(‘그랜드 망상호텔’), 미용사 출신으로 시를 공부하는 아내는 시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아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애니’). 또 교수인 남편은 제자와의 추문에 휩싸여 교수직도, 가족도 잃는 처지가 되기도 한다(‘빈방’). 부부의 해체는 최근 나온 40대 백가흠(41)의 소설집 ‘사십사’에서도 나타나는 설정이었다.
작가가 25세 때 낸 장편 ‘달의 바다’에서 보인 특유의 긍정과 성장의 서사, 그러면서도 젊음이 느껴지는 탄력 있는 문장들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30대가 된 작가의 소설집에서 보이는 변화에 곤혹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이번 소설집은 주제와 스토리들이 가족으로 인하여 받은 상처와 쓸쓸함을 주조로 한다. 이혼이 주변의 다반사가 된 시대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30대 초반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 치곤 좀 어두운 감이 있다.
어쨌든 작가는 가족으로 인해 받은 상처들에 눈길을 주며, 그 상처의 근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를 치유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상처를 씹고 또 씹어 분해하는 것이야말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으니. 표제작 ‘애니’의 주인공 권은 자신을 버린 아내와 과거에 손을 꼭 잡고 보았던 시시한 영화 ‘애니’를 되새김질하게 되는 사건을 만나게 된다. 자동차교습소 도로주행 강사로 일하던 그는 교습생이 애니의 주인공 여배우로 교통사고 이후 홀연히 사라진 마리아임을 알게 된다. 마리아를 통해 자신을 버린 아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증오가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솟아나는데….
‘그랜드 망상호텔’은 주인공 윤슬이 스스로 과거의 상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케이스다. 윤슬은 알코올 중독 어머니 때문에 미국으로 도망치듯 유학을 갔고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과 산다. 윤슬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환각을 보게 된다. 정신과의사는 한국을 다녀올 것을 권했고, 윤슬은 동해안 망상의 한 호텔에 머문다. 어릴 적에 작은 아버지 가족과 함께 두 집이 여행을 갔던 그 호텔에서 히스테리에 진저리가 난 모두가 공모하듯 어머니를 호텔에 감금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소설은 상처받은 이들이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식자층 서울 남편을 만난 시골 출신 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까지의 좌절, 미용사 아내가 시를 배우면서 택시기사 남편에게 느끼게 된 거리감 등 상처 준 이들의 내면은 그리 돌아보지 않는다. 상처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점에서 소설이 좀 더 채워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들을 향한 시선… 정한아 새 소설집 ‘애니’
입력 2015-09-25 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