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추석 밥상’은 꾸밈이 없는 날것 그대로의 민심을 보여준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민심을 가장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국민일보는 23일 정치·경제·사회 분야 전문가 10명에게 이번 추석 밥상에서 오고갈 굵직한 이슈들을 미리 물어봤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서민들이 느끼는 고통·실망이 깊어지면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부적으로는 취업난, 안전, 전·월세대란이 밥상머리를 장식한다고 예측했다.
◇돌고 돌아 결국은 ‘경제’=정치는 언제나 그렇듯 ‘밑반찬’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정치 이슈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마약사위’ 문제, 야당의 분열 등이 화두에 오를 것”이라며 “내년 열릴 총선에서 우위를 점하는 정당이 이후 대선까지 승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도 관심이 갈 것 같다”고 관측했다. 엄 소장은 “수출이 줄어들고 내수가 침체된 상황이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용도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보(북한 도발)와 통일(이산가족 상봉)은 올해 추석 밥상에 빠질 수 없는 ‘별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일론이나 안보 이슈야말로 가족이 함께 이야기해봐야 한다”면서 “세대별로 시각차를 좁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도 “최근 이산가족 상봉부터 목함지뢰 도발 등 안보 이슈가 이어진 데다 통일이 한층 가깝게 느껴지면서 당분간 대북 관련 주제가 명절 밥상에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올해 추석 밥상의 ‘큰 반찬’으로 경제를 두말없이 꼽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급선무라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청년층은 구직, 중장년층은 퇴직이 고민거리”라며 “취업 적령기에 이른 청년층은 극심한 취업난에 대한 불만과 걱정을 토로하고, 은퇴 시점이 다가오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퇴직 후 ‘뭐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을 나눌 것”이라고 관측했다.
곁들여서 노동개혁과 노사정 대타협도 화젯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광호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노동개혁이 추진되면서 각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서로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 계속되는 불황과 재벌에 대한 반감도 밥상에 오를 전망이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오르기만 하는 월세, 구하기 힘든 전세, 서민 삶을 짓누르는 가계부채, 경기 불황 등은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라며 “롯데그룹 등 재벌 오너일가의 행태도 가십거리가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건강, 안전,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세대를 뛰어넘어 느끼는 불안감이 추석 밥상을 지배할 수 있다. 불안감은 최근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와 안전 문제, 청년 실업으로 구체화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반기를 휩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최근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트렁크 살인 사건’ 등 안전과 보건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난이나 사건사고, 취업난을 비롯해 온갖 불안한 요소들이 거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 ‘임금피크제가 청년 취업에 효과가 있을지’ 등에 대해서 얘기가 오고 갈 것 같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 세대가 함께 체감하는 전·월세 대란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수능 개혁 등으로 대표되는 교육문제, 결혼·육아 등의 이슈도 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은 이런 불안감을 ‘먹고사는 문제’라고 말한다. 대학생 한모(23·여)씨는 “하반기 취업시즌 준비로 고군분투하는 추석이 될 것 같다”며 “취업의 ‘취’자만 들어도 가시방석이 되는데 뭔가 현실적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진모(31)씨는 “이사 갈 집을 결정하지 못해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며 “월급만으론 전세조차 마련하기 힘든 현실이 당분간 이어질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김미나 박세환 신훈 기자 mina@kmib.co.kr
[기획] 청년실업… 전·월세… 한가위 밥상 핫이슈는 ‘먹고살기’
입력 2015-09-24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