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은커녕 이성 잃은 대학 축제… ‘넣어줘…’ 낯 뜨거운 문구, 살인마 내세운 ‘오원춘 메뉴’

입력 2015-09-24 02:54
수도권 한 대학의 축제 기간 중 문을 연 주점에 ‘오원춘 세트’라는 메뉴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넣어줘, 빨아줄게.’

성인 비디오 홍보 문구가 아니다. 유흥가 이면도로에 뿌려지는 퇴폐 마사지 호객 전단도 아니다. 축제를 맞아 수도권 한 대학 안에서 운영된 주점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글이다.

특정 대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른 대학 주점 포스터도 별 차이가 없다. ‘수줍게 벌린’ ‘꼬지 빨러’ 등 붉은색 글씨로 나열된 메뉴 이름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렵다.

대학 축제에서 운영되는 주점들의 호객 문구가 금도를 넘고 있다. 이들 주점에서 내건 문구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하는 대학생들의 재치는 찾기 힘들다. 19금(禁) 문구로 어떻게든 눈길을 끌어 보려는 성인 비디오 제작업자가 내놓을 만한 수준이다.

문제는 낯 뜨거운 문구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신을 수백 조각으로 토막 낸 희대의 살인범 이름을 상기시키며 ‘오원춘 세트’를 버젓이 내건 또 다른 대학 주점도 있다. ‘오원춘 세트’에는 곱창볶음과 무뼈닭발을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메뉴를 둘러싼 논란이 번지자 주점을 운영한 이들은 23일 사과문을 내놓고 “경악스러운 범죄에 경각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 ‘방범’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죄수들을 혼내주는 취지의 주점을 기획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오원춘 세트’를 보고 들은 이들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아니라 불쾌감과 당혹감을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 등에게만 충격을 주는 일이 아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조차 끔찍한 살인범의 이름을 되새기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당초 주점 허가를 내준 해당 대학 동아리연합회 측은 문제 주점에 대해 사과하고 “즉시 철수 조치했다”고 밝혔다. 한 발 더 나아가 이 대학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축제 자체를 취소하기로 했다.

대학생의 특권 중 하나는 주변의 시선에 매달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그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면 사회적 파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친구들끼리 어울려 동아리방에서 했던 얘기를 재미있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떠벌리는 건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사과와 해명에도 ‘오원춘 세트’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축제 자체가 취소되면서 이 대학 학생들은 추억을 만들 기회를 잃어버린 동시에 이미지 훼손이라는 이중삼중의 부담을 떠안게 됐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