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에 사는 김민수(가명·36)씨는 촉망받던 금형기술자였다. 그의 손을 거치면 뚝딱 멋진 금형 틀이 만들어졌다. 김씨는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독학해 일본과 중국, 브라질을 오가는 등 알아주는 엔지니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회사에서 차를 몰고 귀가하던 중 깜박 졸다가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옆자리에 타고 있던 사람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본인은 뇌를 크게 다치고 한쪽 눈도 잃었다.
이후 인지기능이 크게 떨어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대소변 처리도 못하게 됐다. 1남1녀를 키우며 단란하게 살던 가정은 한순간에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간병인을 부를 형편이 못돼 중학교 1학년인 딸이 학교와 병원을 오가면서 대소변을 받아냈다. 하지만 가족들의 지극 정성에도 불구하고 치매 증상이 심해져 결국 12월 김제의 한 병원으로 옮겨 왔다.
“날마다 보는 의사선생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요. 딸을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때로는 ‘나는 북한에서 왔다’고 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부인 송미연(가명)씨는 “아직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못하는 등 차도가 없어 가족들의 안타까움이 커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병간호와 더불어 김밥집을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살고 있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시골이어서 하루 매출이 3만원도 안될 때가 많다. 이미 병원비와 동승자의 보험금 구상권 등으로 수천만원이 들어갔다. 더구나 송씨 자신도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오래 걷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국 남편 병문안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나서고 있다.
“어, 왔어? 무슨 일 있어? 아이들은 잘 있고?”
지난 21일 병원을 찾아온 아내를 보고 김씨는 놀라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에 또박또박 얘기하는 남편을 보며 송씨는 “사고 이후 최고로 맑은 상태인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송씨는 26일 하루 남편의 외박 신청을 처음으로 했다. “이번 추석에는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자”는 아내의 말을 알아듣는지 김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군산=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나눔으로 여는 행복] 극심한 치매 증상… 중학생 딸이 대소변 받아내
입력 2015-09-24 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