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이민국가

입력 2015-09-24 00:30

후대의 역사가들은 ‘1983년’을 우리 세대가 최악의 오판(誤判)을 한 해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2.06명이었다. 사상 처음 인구대체수준(2.1명) 아래로 떨어졌다. 2명(부모)이 2명(자녀)씩은 낳아야 부모세대가 세상을 떠나도 현 인구가 유지된다. 여기에 조기 사망 등 변수를 감안한 현상유지 출산율이 2.1명인데, 1983년 그 선이 무너졌다.

이 수치가 비상등인 줄 몰랐던 우리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가족계획 구호를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으로 오히려 강화했다. 이후 출산율은 80년대 말 1.5명까지 급락하더니 2005년 1.08명의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뒤늦게(1996년) 가족계획을 접고, 뒤늦게(2004년) 저출산 대책에 나섰지만 지난해도 1.21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였다.

우리 세대는 1980년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화를 7년 만에 쟁취했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내준 경제주권을 4년도 안 돼 찾아왔다. 하지만 1983년의 오판이 불러온 인구사태는 30년이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아직 일터를 지키는 ‘인구보너스’ 기간도 끝물이다. 내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정년연장과 임금피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내수부진과 저성장, 대학 구조조정….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는 인구사태에 기인한다. 10년 뒤 베이비부머들이 다 은퇴하고 ‘초저출산 세대’가 성인이 되면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제라도 많이 낳자? 그 아이들이 생산인구가 되려면 20년은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30년’은 앞으로 30년이 더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

미국이 강대국인 건 경제력과 군사력에 출산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떨어졌다고 호들갑떨던 2011년이 1.87명이었다. 독신과 이혼이 그렇게 많은데도 현재 2명에 바짝 근접해 있다. 이민자의 나라답게 해외 젊은 인구를 계속 받아들여 인구증가율을 유지한다.

라인강의 기적은 외국인 노동자의 힘이었다. 출산율이 유럽 최하위권인 독일은 2차 대전 후 경제부흥기에 노동력이 부족하자 먼저 그리스·이탈리아에서, 이어 터키에서, 나중엔 우리나라 광부·간호사까지 이주노동자를 받았다. 현재 이주민이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이민을 대하는 독일의 시선은 미국과 달랐다. 이주노동자를 ‘손님근로자’라 불렀다. 영주권을 주는 미국과 달리 다시 돌아갈 사람들로 여겼다. 단일민족 정서가 우리만큼 강한 독일이 생각을 바꾼 건 2005년이다. 새 이민법에서 ‘독일은 이민국가’라고 선언하며 적극적 이민 유치 및 이민자 통합 정책을 법제화했다. 돌려보내던 이민자와 함께 살기로 한 것이다.

당시 독일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집권 사회민주당은 저출산·고령화, 노동력 부족, 경기침체를 해소하려면 이민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야당인 기독교민주연합은 실업이 더 심각해질 거라며 반대했다. 결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선 이민이 필수라는 재계의 요구를 반대파가 수용했다. 그리고 10년 뒤, 이민국가화(化)에 반대했던 기독교민주연합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난민 수용의 선봉에 섰다. ‘난민=인구’로 본 것이다.

다음 달이면 우리 정부의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나온다. 2차 계획에서 이민정책은 저 뒤 페이지에 몇 문장 끼워 넣은 정도였다. 그 시선은 2005년 이전의 독일과 다르지 않다. 불편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점이다. 뾰족한 수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민국가에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인 듯하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