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김영기 KBL 총재] “공 돌리는 거 보러 농구장 가는 사람도 있나”

입력 2015-09-25 02:34
김영기 프로농구연맹(KBL) 총재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 총재는 현재 한국 프로농구가 처한 위기를 진단한 뒤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 구단과 지도자, 선수 모두가 합심해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한국 프로농구가 위기다. 지난 12일 2015-2016 시즌이 열렸지만 개막 주말 2연전 역대 최소 관중(경기당 4106명)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16년 만에 갱신했다. 재미없는 경기에 감독과 선수들의 승부 조작 및 불법 스포츠도박 혐의가 불거지면서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김영기(79) 프로농구연맹(KBL) 총재를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 집무실에서 만나 원인과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나이로 팔순을 맞았지만 김 총재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격정을 토로했다.

-팬들이 왜 프로농구를 외면한다고 보나.

“우리끼리만 농구를 해서 그런 거다. 초창기에는 외국인 두 명이 뛰었다. 같이하니 우리 선수들의 기술도 향상됐다. 하지만 이후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공장으로 보면 선수들은 부품이다. 우리나라 휴대전화도 외국 부품을 쓴다. 좋은 부품을 써야 한다. 국산만 쓰면 안 된다.

외국인 선수 2명과 한국 선수 3명이 뛸 때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이 나왔다. 이상민과 현주엽, 허재, 문경은 등의 평균 득점이 20점이 넘었다. 당시 경기당 득점이 93점이었는데 지금은 73점이다. 무려 20점이나 떨어졌다.

농구는 뭐니 뭐니 해도 골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골 들어가는 것을 보려 하지 공 돌리는 것을 보러오는 사람은 없다. 지금 국내 선수 가운데 20점은커녕 15점 넣는 선수도 없다. 미국 마이클 조던이 35분을 뛰었다. 스타플레이어는 30분은 뛰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팀들은 (스타플레이어를) 이겼다고 빼고, 졌다고 빼고, 아프다고 뺀다. 지난 시즌 부산 kt의 조성민이 경기당 14점을 넣었고 출전 시간이 20분이 안 된다. 질을 저하하는 요인들이다. 보러 갈 대상이 없다. 이러니 장사가 되겠는가. 설렁탕도 맛있어야 손님이 온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나.

“아무렇지도 않게 선수나 지도자가 그렇게 해 왔다. 프로가 아마추어와 다른 것은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고객 관리라는 개념이 없다.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러면 농구는 재미가 없어진다. 또 농구의 생명은 스피드다. 10년 동안 작은 외국인 선수를 빼버렸다. 점점 느려졌다. 반대로 큰 외국인 선수들만 데려왔다. 골밑을 장악해 쉽게 이기려 했기 때문이다. ‘기브 힘(Give him)’ 작전은 제일 재미없는 농구다. 우리 감독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어떻게 바꿀 생각인가.

“다음 시즌부터 1라운드는 한국 선수들끼리 하고 2∼3라운드는 외국인 1명을 투입하려고 한다. 나머지 두 라운드는 외국인 2명을 쓰도록 하겠다. 그러면 우리 선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선수를 구성하는 게 더 재미있는지 비교도 할 수 있다. 지금 체제는 6라운드지만 우리나라는 5라운드가 맞다. 5라운드로 바꿀 생각이다.”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 파문도 끊이질 않는다.

“재미도 없지만 그런 악재들이 농구 인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특히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내 처제가 ‘그럼 지금까지 농구를 짜고 했나 보네요?’라고 하더라. 시청률도 0.5%씩 떨어졌다. 선수들이 불법 도박을 하는 것은 감독과 코치들의 감독 소홀 탓도 있다. 스포츠인은 소위 법령을 넘어 다른 규범으로 통제돼야 한다. 스포츠맨십이다. 지도자는 선수들을 선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쉴 때 카드놀이 같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선수들과 같이한다. 감독과 코치가 농구만 가르치고 월급만 받는 게 아니다. 1950년대 미국인 코치 냇 홀맨과 존 번으로부터 농구를 배웠는데 농구뿐만 아니라 인성(人性)을 바로잡아줬다.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 앞서 매일 오전 강의를 했다. 생리학 박사인 존 번은 스포츠맨십을 가르쳤다. 담배의 위험성을 알려줬고 땀방울의 고귀함을 전했다. 독서의 중요성도 깨우쳐줬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불법 행위가 근절될까.

“모든 선수에게는 기술과 품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품성을 빼버리면 깡패가 된다. 힘만 쓰는 것이다. 감독과 코치들이 교육적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네가 플레이하는 것을 청소년들이 보기 때문에 올바로 해야 한다’고 주지시켜야 한다.”



-징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에 살펴보니 KBL에 음주운전과 성희롱에 대한 양형제도도 없었다. 그래서 새로 만들어 이사회에 상정해 놨다. 만약 음주운전을 하게 된다면 엄청난 액수의 제재금을 내야 할 것이다. 그 선수가 연봉 5억을 받는다면 억대의 제재금을 부과할 것이다. 불법 스포츠도박은 KBL 선수 신분일 때 했는지, 대학 때 했는지 구별해야 한다.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 다른 스포츠단체와 형평성도 맞춰야 한다.”



-프로농구계를 어떻게 바꿔보고 싶나.

“선수 몸값의 거품을 빼고, 재미있는 농구를 해 누구나 구단을 살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 싶다. 나를 포함해 구단주들은 구단을 운영하면서 원가 개념으로 생각을 많이 한다. 돈이 들어가는데, 그만한 상품을 만드느냐다.

비용 중에서 선수 몸값이 가장 크다. 프로농구가 시작될 때 샐러리 캡(구단 전체 선수 몸값 상한선)이 10억원이 안 됐다. 지금은 약 3배가 오른 28억원이다. 구단주들은 그만한 가치가 올랐는지 따진다. 단신 외국인 선수를 1억6000만원에 데려오는 데 비해 우리 선수들의 몸값이 지나치게 많다. 구단주들은 KBL이 앞장서서 구조조정을 하라고 한다. 10년 전만 해도 구단이 수지를 맞췄지만 이젠 연봉이 너무 높아졌다.

사실 이 문제는 심각하다.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 구단주가 농구를 안 하게 된다. 일부 기업 주주총회에선 왜 수지맞지 않는 스포츠를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내가 투자자문회사 사장을 할 때 펀드 모집에 관여해 봤다. 다수의 사람에게 돈을 모아 그것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프로스포츠는 누구든지 구단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비용을 줄여야 한다. 10개 구단으로 계속 가되, 팀 매매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장기적으로 프로농구의 가치를 유지하는 길이다.”

김영기는 누구…

김영기 KBL 총재는 농구인이자 경영인이다. 배재고를 거쳐 고려대, 기업은행에서 농구를 했고 1950∼60년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은퇴 후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 남자농구 사상 첫 금메달을 이끌어 명장 대열에 합류했다. 1976년 중소기업은행 지점장, 1988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1991년 신보창업투자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경영인으로서의 수완도 발휘했다. 이후 농구계로 돌아온 김 총재는 1997년 KBL 전무이사를 맡는 등 한국 프로농구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KBL 부총재(1999∼2002년)를 거쳐 3대 총재(2002∼2004년)를 맡은 후 지난해 8대 총재로 선출돼 10년 만에 농구계에 복귀했다.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