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의 ‘이태원 살인사건’이 다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진범으로 지목된 아서 존 패터슨(36)은 미국 현지에서 체포된 뒤에도 각종 법률상 수단을 동원해 4년이 넘도록 송환을 피해 왔다. 법무부는 “패터슨 송환은 한·미 당국의 사법공조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호송팀, 현지로 날아가 압송=법무부는 국제형사과 검사와 수사관 등 5명을 미국에 파견해 22일 오후 3시30분 LA국제공항에서 미 연방보안관(US Marshals)으로부터 패터슨의 신병을 인도받았다. 이어 우리 영토인 국적항공기 입구에서 구속영장을 집행하고 수갑을 채웠다. 호송팀은 한국행 KE012편 안에서 패터슨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앉아 일반승객과 ‘격리’했다. 패터슨은 23일 새벽 귀국하는 대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이 사건은 2011년 1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에 계류 중이며, 국선변호인도 선임돼 있다. 패터슨을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수사 기록 검토와 혐의 입증 전략 수립 등 재판 준비에 들어갔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 발생했다. 그날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3세)씨가 흉기로 살해된 채 발견됐다. 현장에 있던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에드워드 리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살인죄로 기소된 리는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20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파기환송돼 무죄가 확정됐다. 반면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가 98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검찰은 뒤늦게 패터슨을 진범으로 보고 수사를 재개했지만 그는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99년 8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패터슨의 해외 도피는 ‘이태원 살인사건’이라는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피해자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3)씨는 패터슨의 송환 소식에 “내가 이날 오기를 기다려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사람을 죽인 만큼 와서 벌을 받아야 한다”며 “당시 시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4년을 버틴 패터슨=법무부는 2009년 10월 미 법무부와 공조 끝에 패터슨의 소재를 확인한 뒤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그는 2011년 5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체포돼 재판에 회부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그해 12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정식 기소했다. 공소시효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 법원은 이듬해 10월 범죄인인도 허가를 결정했으나 패터슨은 이와 별개로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했다. 범죄인인도 결정이 적절한지 다시 한번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패터슨의 청원은 지난해 6월 1심과 올 5월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됐고 7월에는 재심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패터슨으로서는 3개월 내 상고를 제기해 마지막 판단을 받아봐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은 범죄인인도 결정의 집행 정지 신청을 하지 않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 미국 관련법에 따르면 인신보호청원을 제기하려면 범죄인인도 집행 정지 신청을 해야 하고, 각 심결 이후 2개월 이내에 이를 연장해야 한다. 패터슨은 기한이 만료될 때까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법무부는 이런 상황을 노려 미국 당국을 설득했고 결국 19일 송환 결정을 이끌어 냈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공식 회의만 5차례 열었고, 수시로 이메일과 전화통화로 상황을 주고받는 공조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호일 나성원 기자 blue51@kmib.co.kr
16년 버틴 ‘이태원 살인사건 그놈’ 송환… “한·미 사법공조 극적인 사건”
입력 2015-09-23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