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상자와 여행가방으로 분위기를 잡던 시절은 지났다. 유력자에게로 흘러가는 부패자금을 쫓는 검찰 특별수사부의 눈길은 일단 협력업체들로 모이고 있다. 전통적인 금품 전달 방식보다 협력업체를 세워 자리와 이익을 동시에 보전해주는 형태로 ‘뒷돈의 기술’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비리의 진화에 따라 검찰 특별수사 트렌드도 ‘다운-업’ 형태로 달라졌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역할을 물려받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 특별수사 부서들은 협력업체에 묻은 주변 비위부터 확인해 중심부의 거악에 접근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의 ‘포스코 연중수사’ 비판 여론을 반전시킨 요인은 정준양(67) 전 포스코 회장과 유력 정치인들의 연결고리로 의심된 협력업체들이었다. 22일 현재까지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협력업체 5곳은 새누리당 이상득(80) 전 의원, 이병석(63) 의원의 측근들이 소유·경영한 곳들로 파악됐다. 기존 협력업체의 물량을 빼앗는 구조와 정 전 회장 재임 중 급성장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특수2부는 2009년 정 전 회장 취임 전후 신설된 협력업체 중 서울의 중앙 정치권과 연계된 일명 ‘기획법인’들로 수사 범위를 한정키로 했다. 포스코 출신 및 지역 정치권과 얽힌 업체가 너무 많아 제기되는 특혜 의혹 하나하나를 다 살필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런 관행이 정 전 회장 취임 이전부터 뿌리를 내렸다고 본다. 포스코 관계자는 “찾아낼 수 있다면 이번 기회에 다 찾아내서 투명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의 농협중앙회 수사에서도 협력업체가 비리 확인의 ‘키맨’이었다. 검찰은 농협의 각종 시설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도맡은 H건축사사무소를 주목했다. 최원병(69) 농협중앙회장의 친동생이 고문으로 활동한 곳이었다. 이곳의 실소유주 정모(54·구속기소)씨는 사업비를 부풀려 5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고, 수주 특혜가 농협중앙회 쪽으로 되돌려진 정황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퇴직 임원 ‘밥그릇 챙겨주기’ 형태로 협력업체가 동원되는 장면은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의 KT&G 수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검찰이 수사 초기 압수수색한 KT&G의 협력·하도급업체들에는 KT&G 출신 임원들이 낙하산처럼 내려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들은 정당한 경쟁 없이 이익을 보장받았고, KT&G는 뭉칫돈을 돌려받는 공생을 이어갔다.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의 남양주 야구장 인허가 비리 수사,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의 신원 박성철(75·구속 기소) 회장 사기파산 수사 등도 변칙적인 금전 이익 제공을 파헤친 사례다. 김모(68·구속 기소)씨에 대한 유휴부지 운영 위탁은 30년간 114억원을 제공하는 효과였다. 박 회장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차명으로 돌려 무일푼 행세하며 250억원의 빚을 갚지 않았다. 신원은 그의 주택이 압류되기 직전 낙찰 받아 몰래 무상 제공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진화하는 ‘뒷돈의 기술’… 그러나 협력업체는 알고 있다
입력 2015-09-23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