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0년차 김지환(가명·38)씨는 A대기업의 영업파트에서 근무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에 A기업도 대학생들에겐 꿈의 직장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김씨는 최근 부쩍 회의감에 빠져 있다. 지난해 과장 승진 이후 더욱 팍팍해진 업무 탓이 크다. 오후 8시에만 퇴근해도 감지덕지한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가족과 평일 저녁을 함께하는 건 꿈도 못 꾼다. 최근 반년 동안은 거의 매 주말 중 하루는 회사에서 보냈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A기업은 연장근로수당 등을 일정시간으로 계산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15일 최종 타결된 노사정 대타협 중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16시간 줄이는 방안(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에 주목했다. 합의대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김씨도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김씨의 기대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포괄임금제’ 규제해야=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16일 당정이 노사정 대타협안을 바탕으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으로는 김씨에겐 직접적 변화가 생기기 어렵다.
이유는 포괄임금제에 있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달 고정적으로 정해진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기본급 등에 초과근로수당을 포함해 월급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대법원 판례상 ‘초과 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려운 사업장’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되고 있을 뿐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아예 규정이 없다. 연봉제가 확산되면서 연봉에 초과 근로시간을 뭉뚱그려 포함시키는 편법적 연봉계약이 함께 늘어나고 있지만, 정확한 법 규정이 없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상당수 사무직 월급쟁이들의 처지는 김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정식 퇴근시간이 몇 시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이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9일까지 국내 30대 기업에 재직 중인 정규직 근로자 110명을 대상으로 심층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56.8%가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다고 답했다. 이는 매일 연장근로(야근)를 한다는 응답률(52.3%)과 비슷하다.
새누리당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서는 포괄임금제 규제나 금지 등과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 상당수 사무직 근로자는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초법적으로 남용되는 포괄임금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적인 기준을 제시하거나 현행법에서 특정 전문직 등에 한해 적용하는 재량근로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에 참여했던 공익 전문가들도 “현재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포괄임금제를 불법화해야 한다”는 검토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국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라도 관련 내용을 논의해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근로시간 60시간 생산직 대부분 이미 적용=반면 시간당 수당이 월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생산직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실근로시간을 줄이고 그만큼 신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현재 발의된 개정안은 주당 휴일근로(16시간)를 연장근로(12시간)에 포함시켜 현재 1주일에 최대 68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되 노사 합의에 의해 1주 8시간까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토록 했다. 사실상 주당 60시간으로 단축되는 효과다.
문제는 이 60시간은 이미 상당수 생산직 근로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도 최근 ‘근로시간 단축의 고용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총 근로시간을 60시간으로 제한할 경우 근로시간 단축효과는 1주일 0.2시간(0.9%)에 그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노사정위 공익위원은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더라도 한 달 또는 1년에 몇 시간 이내 등과 같은 총량 규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서 “법 개정안에 이 같은 부칙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Wide&deep] 근로시간 단축 가능할까… 法에도 없는 ‘포괄임금제’ 규제 빠져 그림의 떡
입력 2015-09-23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