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강원도 원주 상지대 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체전 남자복싱 라이트플라이급(49㎏) 결승전. 신종훈(26·인천시청)이 월등한 기량을 과시하며 안성호(대구시체육회)를 압도했다. 결과는 3대 0 완승. 대한복싱협회와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이룬 전국체전 4연패였다. 가슴을 졸이며 응원하던 어머니 엄미자씨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에 한국 복싱에 금메달을 안긴 신종훈. 그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러브를 꼈다. 고교 전승 기록을 세울 정도로 유망주로 각광받았지만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팀을 포기하고 실업팀을 택했다. 스무 살에 국가대표 1진에 오른 뒤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제패 후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정했다.
신종훈은 평소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으로 운동한다. 대한민국 복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24일 눈물을 머금고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왜 신종훈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걸까.
신종훈은 국제복싱협회(AIBA)가 아마추어 복싱의 인기를 되살리겠다는 취지로 추진한 ‘AIBA 프로복싱(APB)’과 지난해 5월 계약했다. 그해 11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APB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제주 전국체전에 출전한 신종훈은 계약 위반을 이유로 AIBA로부터 내년 4월까지 1년6개월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신종훈은 국내 대회 출전 불가 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대한복싱협회는 그를 외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훈은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에서 “협회가 경기당 200만원도 안 되는 대전료를 받고 1년에 5번 정도밖에 뛰지 못하는 APB 대회에 출전하기를 강요했다”며 “그 과정에서 많은 회유와 협박이 있었다”고 말했다. 협회는 지난 7월 신종훈 측에 APB 경기와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아시안게임을 제외한 국내 대회 등에 출전하면 안 된다는 조건으로 징계 해제를 제안했다. 그러나 국내 대회에 출전이 중요한 실업팀 선수인 신종훈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신종훈은 태극마크를 내려놓았지만 꿈마저 내려놓지는 않았다. 그는 협회와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전국체전 출전을 불허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법원은 지난 15일 신종훈의 손을 들어줬다.
신종훈은 경기 후 “금메달보다 자존심을 되찾은 게 훨씬 값지다”며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도쿄올림픽(2020년)도 좋다. 꼭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신종훈은 현재로선 2016 리우올림픽 출전이 불가능하다. 내년 4월 이전에 올림픽 티켓이 걸린 아시아지역 예선과 세계선수권이 끝나기 때문이다. 유일한 희망은 내년 6월 AIBA 오픈복싱(AOB) 대회에서 출전 티켓을 따는 것이다. 그러나 신종훈이 이번 전국체전에 출전해 AIBA가 추가 징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돌아온 링… 비운의 복서 ‘신종훈’, 다시 꿈꾸다
입력 2015-09-23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