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사전에서 ‘줄 사(賜)’를 찾아보면 임금과 관련이 있는 단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단순히 ‘주다’는 뜻에 ‘(은혜를) 베풀다’ ‘분부하다’ ‘은덕’ ‘하사(下賜)한 물건’ 등과 같은 의미가 배어 있다고 설명돼 있다.
공적이 많은 신하에게 임금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사명(賜名)’이라 하고, 사물(賜物)은 임금이 내려주는 물건을 뜻한다. 임금이 신하에게 술잔을 내리는 것을 사배(賜杯)라 하고, 고려·조선 시대에 임금이 왕족·공신에게 노비나 토지를 하사할 때 소유에 관한 문서를 주는 행위 또는 그 문서를 사패(賜牌)라 했다. 왕족이나 사대부가 죄를 지었을 때 자결케 하기 위해 임금이 보내는 극약이 사약(賜藥)이다. 이렇듯 賜자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단어가 왕과 관련돼 있다.
하사(下賜)는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이라는 뜻이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대통령 하사금’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과거 신문을 뒤적여보면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를 방문, ××에게 하사금을 수여했다’라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수사 때에는 전씨가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 30억원을 하사금으로 줬다는 게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청와대 뉴스’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하여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장병들에게 격려카드와 특별간식을 하사할 예정입니다’라고 돼 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하사’라는 표현이다. 뭔가 지금 시대와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청와대 안에서는 이런 표현이 더 어울리는 분위기인가. 홍보팀은 왜 굳이 이 표현을 썼을까. 단순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이니 문자적으로 틀리지 않다는 생각만 했을까.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리라고 예상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대통령 각하(閣下)’라는 경칭까지 다시 사용하자고 할지 모르겠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下賜
입력 2015-09-23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