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IQ가 높으면 성공한다고 했다. IQ(Intelligence Quotient)는 지능지수, 즉 암기력 이해력 분석력 등 이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EQ(Emotional Quotient), 즉 감성지수가 높아야 성공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EQ만 강조하면 너무 무능한 감상적 리더십으로 끝날 수가 있다. 고려 공민왕도 처음에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었으나 나중엔 죽은 노국공주를 향한 연모적 감성에만 치우치다 왕조가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왕인 콘스탄티누스 11세도 오스만 튀르크의 군사가 몰려오는 급박한 상황에도 죽은 왕후의 꿈이나 꾸며 무능한 감상적 리더십에 빠졌다. 그러다가 결국 메흐메드 2세의 말발굽 아래 짓밟혀 비참한 제국의 최후를 맞았다.
그래서 요즘은 학계에서 PQ(Political Quotient)리더십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영국 게리 레퍼와 발레리 와크 교수는 PQ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이성과 감성을 잘 조화시켜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면을 강조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동안 정치 파행과 불신이 낳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나도 한동안 국회를 드나들고 정치인들과 교류하니까 정치 목사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교회의 공익과 공공의 선을 위해서 나름대로 PQ리더십의 안목을 가지고 섬겼던 것이다. 특별히 동성애와 이슬람 확산을 막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개인 활동의 보폭을 넓혔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정치인과 소통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을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특별히 복음주의권은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 그런 일은 정치인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복음만 전하고 예배와 기도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에 빠졌다가 대표적으로 망한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에 낙태, 동성애, 이슬람 문제가 왔을 때 영국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맡기고 자신들은 복음만을 전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방관한 채 대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가 지지 않는 세계 최강국이자 기독교국가나 다름없었던 영국교회는 지금 기독교인이 5%도 안 된다. 지금 영국에서 기독교인은 이슬람 교인만도 못한 푸대접을 받으며 뒷전에 밀려나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소극적인 복음주의적 마인드만 갖고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키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그러다 개교회주의, 개교단주의에 빠져 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법이 통과돼도 속수무책이었다. 미국에 큰 교회 목사와 큰 교단 총회장이 있었지만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도 그 시험대에 놓여 있다. 한국교회는 복음주의적 정체성을 수호하면서 동시에 사회를 향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한다고 해서 목회보다는 교단·총회정치를 하거나 교계정치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좀 더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고 한국교회의 공익과 공공의 선을 위해서 거룩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자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보호하고 목회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성스러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목회자와 교인들의 의식 구조를 바꾸고 연합기관들이 하나 되어 교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 또 한국사회를 향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박수 치며 응원해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이성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무능한 감상주의에 빠져 한국교회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절망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의식을 바꾸고 하나 되면 할 수 있다. 늦지 않았다. 이제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이 IQ와 EQ를 넘어 거룩한 PQ리더십을 발휘하자. PQ리더십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한국교회를 지켜내고 하나님의 도성을 확장해 나가자.
소강석 (새에덴교회목사)
[소강석의 꽃씨 칼럼] 거룩한 PQ리더십 발휘할 때
입력 2015-09-23 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