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신용등급을 표기할 때 각각 다른 기호를 사용한다. S&P의 최우량 신용등급은 AAA이고 그 아래는 AA+ AA AA-로 이어진다. 반면 무디스의 경우 Aaa로 시작하여 Aa1 Aa2 Aa3로 이어진다. 상위 10번째 등급까지가 투자등급이고 11번째 등급부터는 투기등급으로 분류한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당한 1997년 우리의 신용등급은 S&P 기준으로 14번째 등급인 B+까지 강등되었고, 무디스 기준으로는 11번째 등급인 Ba1까지 하락한 바 있다.
4년 전 2011년 8월 5일 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등급 강등하여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국채 발행 한도를 둘러싸고 갈등을 보인 것이 화근이 되었다. 당시 S&P의 데븐 샤마 CEO는 이로 인해 결국 8월 23일에 사임하였다. 하지만 후폭풍은 컸다. 미국 국채 가격 하락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시장은 상당 부분 위축되면서 재정상황이 힘들었던 그리스 국채를 포함한 남유럽 국채로 불똥이 튀었다. 미국 국채 등급이 떨어지는 상황이니 그리스 국채는 거의 정크본드 수준으로 평가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스 국채에 대한 제삼자 보증료에 해당하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은 4000bp(원금의 40%) 근처까지 급등하였고 그리스 사태는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미국의 신용등급을 올리지 않고 있는 S&P가 최근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하는 동시에 일본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였다. 다섯 번째 등급인 A+였던 한국의 신용등급은 네 번째 등급인 AA-로 상향조정된 반면 일본은 우리와 정반대로 네 번째 등급에서 다섯 번째 등급으로 하향조정되었다. 우리와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우리의 견조한 재정상황과 대외건전성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등급 상향이 이루어졌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이 발표된 직후에 이 소식이 전해진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최근 미국이 금리 인상을 연기함으로써 한숨을 돌렸지만 결국 금리는 연내에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는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대규모 자본유출의 가능성이다. 그런데 신용등급 상승은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자본유출은 신용등급이 낮은 국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등급이 오른 한국경제로부터의 자금유출 가능성은 줄어들었고 오히려 다른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실제로 2013년 버냉키 쇼크 당시 신흥국을 빠져나간 해외 자본이 우리나라로 유입된 바 있는데 이제 그러한 흐름을 조심스레 기대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다.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특히 내수 부진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점은 영 찜찜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의 건물 공실률이 상반기 13.1%에 달했는데 그중에서도 전북이 최악으로 22.6%, 대전은 그 다음으로 21.5%이다. 하반기에 내수가 계속 안 좋은 가운데 중국 경제의 부진이 이어지면 경제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선물이 주어졌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경제의 연착륙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호시우행’이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앞을 보면서 소처럼 묵묵하게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운용에 가장 필요한 자세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 전 금융연구원장
[경제시평-윤창현] 한국 신용등급 올랐지만
입력 2015-09-23 00:20 수정 2015-09-23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