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기 좋은 계절이다. “감사합니다”는 긍정적인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정도만큼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요즘에는 인사말로 꽤 많이 사용된다.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은 정말로 안녕하신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수도 있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끼리의 간단한 인사말이기도 하다.
과거 미국에 갔을 때 소도시에서 처음 보는 사람인데 마주칠 때 “하이!”라고 인사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하이!”라는 말만큼 외국에서 많이 쓰는 말이 “생큐!”인데 이제는 우리도 “안녕하십니까”라는 말에 버금가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운동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대부분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좋다. 그런데 왜 좋은지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은 기쁨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쁨을 같이 나눈다는 것은 쉬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슬픔을 나누기보다 더 어렵다. 슬픔의 경우,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아픔을 같이 나누는 것은 마음을 선하게 먹고 귀 기울이면 가능하다. 하지만 기쁨을 같이 나누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기쁜 일의 성격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쁠 수밖에 없는 일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나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선수와 겨뤄서 이겼을 때는 우리 모두 기쁘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끼리 기뻐할 때 우리나라에서 뭐라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끼리 겨뤄서 이겼을 때 진 사람 편에서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땅을 산 사촌은 기쁘고 감사하겠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오히려 배알이 뒤틀릴 수도 있다. 시기와 질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잘되거나 높이 올라갈수록 겸손해야 한다는 조상님의 가르침이 있었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늘 들어 왔다. 그래야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진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이긴 사람에게 축하해주는 미덕도 권장되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런 일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의 틀을 바람직하게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장려하는 것이다. 이렇듯 진심으로 남의 일에 기뻐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사실은 정신의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누구나 우울증이 생기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우울증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늘 기쁠 것이고 우울증이 생길 수 없다. 또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기쁨을 느끼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자율신경계의 과도한 자극이 감소해 신경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몸과 마음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놓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항상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다.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된 말씀은 아니겠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심지어 ‘고난을 당해도 기뻐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깊은 종교적 성찰이 있어야 실행할 수 있는 쉽지 않은 일이며, 또한 이러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도 어려움을 승화할 능력이 있는 매우 건강한 정신상태라고 볼 수 있다.
수확의 계절인 요즈음 내가 원하는 것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됐다는 자족의 마음을 갖고 감사함을 느끼고 함께 나누는 것은 어떨까.
박용천(한양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청사초롱-박용천] 감사에 대한 정신의학적 견해
입력 2015-09-23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