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활어를 비롯해 조개류, 갑각류, 건어물 등 각종 수산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싱싱한 해산물들이 퍼덕거리는 것이 마치 바닷가에 있는 시장에 온 것 같은 생동감이 있어 좋다. 정겨운 흥정이 오가는 가운데 다양한 수산물을 구할 수 있으니 수산물 쇼핑 천국이 따로 없다.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는 구매한 활어를 회로 떠서 바로 먹을 수 있으니 도심에서 맛보는 바닷가의 정취는 번듯한 횟집에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이제 쉬셔도 좋을 만한 연세의 할머니가 ‘팔팔하신’ 모습으로 열심히 장사하시는 것을 보면 그 모습과 열심을 본받고 싶어진다. 펄쩍펄쩍 뛰는 생선을 잡아 칼질하는 모습에서 할머니의 삶의 이력이 깊게 새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해산물을 배경으로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난해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한 드라마 촬영지로 주목받은 이곳은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유커’들 사이에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아 최근 발길이 이어지고 있단다. ‘이념은 바꾸어도 입맛은 못 바꾼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회를 잘 먹지 않는다는 중국인들이 여기서 회도 즐긴다니 드라마 한류 열풍의 힘이 대단하다.
수산시장 현대화 계획에 따라 새 건물이 완공되면 이곳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유커를 위해 통역 서비스 등 다양한 콘텐츠로 유커 유치 마케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하니 수산시장도 한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변신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자수성가한 이도 있을 것이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할머니도 계신데 그분들의 삶이 녹아 있는 지금의 낯익은 풍경을 다시 볼 수 없겠다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다. 제철인 꽃게와 오늘 특가로 서비스한다는 고등어를 사서 뒤돌아서며, 재래시장의 문화가 몸에 밴 할머니가 현대화된 건물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맞는 풍경을 슬쩍 그려본다.
김세원(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수산시장 풍경
입력 2015-09-23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