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못생겼다. 게다가 뚱뚱하기까지 하다. 이 정도면 판타지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TV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되기란 쉽지 않다. 걸그룹 멤버들에게는 더 혹독하다. 예쁜 외모는 의무에 가깝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흔한 일은 아닐지라도 드라마는 가끔씩 '못생겼지만 사랑스러운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삼는다. 요즘은 실력파 걸그룹 멤버를 더 인정하는 추세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여자가 예쁘지 않다는 것은 죄악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불쾌하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외모로 평가받기란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남성의 외모 약점은 경제력으로 가릴 수 있다는 게 통념이다. 그렇다면 여성의 외모 약점은 대체 무엇으로 밀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던져주는 드라마들이 있다. MBC 새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와 14번째 시즌을 이어가는 tvN 월화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다. 두 드라마 모두 못생긴 여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외모만 보고 두 주인공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속속들이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그녀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쁘게 생기지 않아도 사랑스럽고, 뚱뚱해도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게 된다.
◇‘주인공 친구3’쯤 되는 조연이 어울릴 것 같은 여자=‘그녀는 예뻤다’의 주인공 김혜진 역을 맡은 황정음은 홀딱 젖은 채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며 이렇게 독백한다.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주인공처럼, 누군가는 조연처럼 살아가는 것 아닐까. 그럼 난 아마 주인공의 친구3쯤 되는 조연, 아니 스포트라이트는 받을 일도 어울리지도 않는 존재감 제로의 엑스트라일지도 모른다.”
그런 독백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황정음은 못생기게 나온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곱슬머리에 깡마른 몸, 얼굴엔 주근깨가 까맣게 올라와 있다. 펑퍼짐한 검은 바지, 어울리지 않는 하얀 양말에 뛰기 편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진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면접에서도 외모 타박을 듣기 일쑤다.
외모 탓에 자신감을 잃을 때도 많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많다. 하지만 혜진은 스스로를 ‘못생겨서 한심하다’거나 ‘불쌍하다’거나 ‘찌질하다’고 깎아내리지 않는다. 비록 너무 잘생겨진 첫사랑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일상이 칙칙한 것은 아니다. 높은 자존감이 사람을 예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망가짐을 불사한 연기도 캐릭터를 살리고 있다. 못생겨진 황정음은 ‘그래서 더 예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쁜 주인공 옆에서 망가지는 감초 역할이 더 익숙할 것 같은 여자=‘막돼먹은 영애씨’의 이영애는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가장 낯선 스타일의 여주인공이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되려면 못생겼어도 날씬하거나, 뚱뚱해도 예쁘거나 둘 중 하나는 갖춰야 한다.
이영애 캐릭터를 연기하는 여배우로 김현숙이 캐스팅 된 것은 모험이라고 할만했다. 황정음이 원래는 예쁜 것처럼,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도,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도 못생기거나 뚱뚱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나 실제로는 예쁘고 날씬한 배우다. 분장을 하거나 일부러 살을 찌워서 못생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현숙은 원래 ‘미녀배우’는 아니다.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여배우의 미모를 갖추지는 않았다. 억지로 살을 찌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영애를 연기하는 김현숙은 캐릭터에 꼭 맞는 연기와 싱크로율 100%의 모습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래서 더 예뻐 보이고, 그녀의 활약이 통쾌하고 종종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주인공 친구쯤으로 나와서 감초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 이영애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과감한 시도였다. 마니아층 두터운 이 드라마에서 이영애는 수많은 평범한 여자들과 닮은꼴이다. ‘눈길 가는 조연 캐릭터의 삶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드라마이자 1인자만 주인공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틀렸다’고 말해주는 드라마가 됐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덜 예뻐서 더 사랑스런 그녀들… 인기 치솟는 드라마속 두 주인공
입력 2015-09-23 02:59